임호준 기자의 건강 가이드 술보다 무서운 것은 '담배'
[조선일보 임호준 기자] ‘해장(解腸)’을 한다고 나가서 매운 낙지볶음과 조개탕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사실 해장에는 최악의 메뉴인데 입맛이 그렇게 땅겨서….) 한 후배 기자는 “어제밤 과음을 해서 그런지 지금도 속이 따끔따끔 거린다”면서 밥은 입에도 못대고 조개탕만 먹어 댔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기자는 “너 그렇게 술 마셔대면 위 빵꾸난다. 나도 옛날에 위에 빵꾸가 나서 몇달간 고생했다”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홍보과 직원은 “매일 헛배가 불러서 몇끼를 걸러도 배가 고프지 않고, 조금만 신경을 쓰면 체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이와 같은 대화가 도대체 대한민국 구석 구석에서 얼마나 자주 벌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만성 스트레스, 과음, 과식, 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위장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아마 신경성 위염이나 만성 위염 등으로 소화불량에 시달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한 분도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속이 쓰리고, 더부룩하고, 헛배가 부르고, 자주 체하는 등의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좀 민간한 분들은 “혹시 이것이 위암 증상이 아닐까”라며 걱정도 하십니다. 그 바람에 어느 병원이나 소화기 내과엔 환자가 미어 터지고, 약국은 소화제와 제산제로 장사를 다 하는 것 같습니다.
위장병으로 고생하시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을 위해 위장병 상식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누구나 위에 대해선 다 아는 척 말하지만 사실 잘못알거나 부적절하게 알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상식 중 하나가 술과 위장병과의 상관관계 입니다. 누구나 “폭음하면 위에 구멍이 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폭음과 위 궤양은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독한 술을 많이 마시면 위 점막이 상처가 나서 피가 배어나오는 급성 위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술 마신 다음날 속이 쓰리고 아프고 식사를 하기 힘든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위에 구멍이 나지 않습니다. 알콜 중독자들의 위를 검사해 봐도 그들 중에 특별히 위 궤양이 많지 않습니다. 위산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세균이 원인인 경우가 80% 정도로 가장 많으며, 그 밖에도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스트레스, 맵고 짠 음식, 담배나 커피 등 기호품 때문에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담배가 술보다 위에 더 해롭다는 얘기를 처음 들어본 분들이 아마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만 흡연은 위궤양을 악화시키며 재발케 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위궤양이 완치됐더라도 담배를 계속 피우면 대부분 1년 이내에 궤양이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술 마셔서 위에 빵꾸났다”는 말 보다는 “담배 많이 피워서 위에 빵꾸 났다”고 말하는 게 훨씬 정확한 표현입니다.
한편 위염이나 위-십이지장궤양이 암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안심해도 됩니다. 많은 분들이 위염이 오래되면 위암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위암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맵고 짜고 타고 뜨거운 음식을 먹는 습관, 스트레스, 유전성, 흡연 등의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병하지, 만성 간염이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특정 질병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위암 예방을 위해선 식습관을 교정하고, 금연하고,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만성 위축성위염, 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 위용종 등이 있는 경우엔 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위암 이전의 상태라는 의미로 ‘전암병변(前癌病變)’이라 부릅니다. 물론 전암병변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위암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발병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만성위축성위염이란 위 점막세포가 지속적으로 손상을 받아 위축되는 것으로 흔히 의사들은 “위가 얇아졌다”고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 만성 위축성 위염 환자의 10% 정도가 위암에 걸리며, 위축성 위염이 암이 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6~24년 정도라고 합니다. 위축성위염이 암이 되는 속도와 가능성은 젊을 수록 크므로 젊은 사람에게서 위축성위염이 발견되면 더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60세 이상 노인에게서 발견된 위축성 위염은 위암이 될 가능성도 낮은데다, 설혹 위암이 된다고 해도 20년 이상 걸리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상피화생이란 위 점막이 소장이나 대장 점막처럼 바뀌었다는 얘깁니다. 즉 위 점막의 분비선이 없어지고, 위 점막에 작은 돌기같은 것이 무수히 생기며, 붉은 점막이 회백색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노인에게서 비교적 많이 관찰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조직검사를 해 보면 약 20~30%에게 장상피화생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위축성위염보다 위암 발병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1~2년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를 해서 같은 부위의 조직 검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내시경 검사를 하면 ‘폴립’ 또는 작은 혹이 발견되는 일이 비교적 흔한데 이를 위용종이라 합니다. 이는 양성 종양이기 때문에 크기가 작은 경우엔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양성이지만 어느 순간 암세포로 변화할지 모르므로, 가능한 제거해서 용종 세포가 암 세포를 닮아가고 있는지 조직검사를 해 보는 게 좋습니다. 특히 크기가 2cm 이상인 경우엔 반드시 제거해서 조직검사를 해야 합니다. 조직검사를 해 보면 위용종 세포가 위암세포를 닮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이형성(異形性)’이라고 합니다. 이 때는 위암에 준해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말이 길어졌지만 요약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위장병의 예방을 위해선 맵고 짜고 뜨거운 음식을 많이 먹는 식습관을 고치고, 담배를 끊고, 필요한 경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제거하고, 정기적으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또 스트레스는 위에 매우 직접적인 손상을 주므로 요가, 운동, 취미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술과 커피 등을 가급적 줄이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위 질환 명의는 크게 위염-위궤양 등을 치료하는 내과와 위암을 수술하는 외과로 나눌 수 있는데 내과에선 현재 노무현 대통령 주치의를 맡고 있는 서울대병원 송인성 교수, 고대안암병원 현진해 교수, 서울아산병원 민영일 교수, 영동세브란스병원 이상인 교수 등이 명의로 꼽히고 있습니다. 외과에선 인제의대로 자리를 옮긴 김진복 전 서울대교수가 명실상부한 최고 명의였으나, 요즘은 신촌세브란스병원 노성훈 교수를 더 명의로 꼽고 싶습니다. 서울아산병원 김병식 교수, 서울대병원 양한광 교수, 고대구로병원 목영재 교수 등도 위암 수술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의사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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