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부국강병론(1) 이공계 대학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1. 무엇이 문제인가?
새 정부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하고 제 2의 과학기술입국을 선언하며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현을 위해 추진 중입니다. 실천방안으로 지방대학 육성,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상강화 등이 거론되기도 합니다만, 보다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아직은 미흡하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당면한 이공계 기피현상 해소나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결해야할 과제가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공계 대학교육 체제 개선일 것입니다.
회사가 대학교육의 표준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대기업을 위시로 한 국내기업들은 이공계 대졸자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무시하다시피하고 1-2년 재교육을 시켜 현업에 활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석박사급 고급인력은 해외 유명대학이나 해외업체에 취업한 인력을 억대 연봉을 제시해 유치해오면서 국내 대학원 졸업자와는 차별을 강화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책임이 국내대학 당국에 있는 것만은 아니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경각심을 갖지 않고 10-20년전 교과목만 가르치는 일부 대학의 구태의연한 모습에도 분명 책임이 있습니다. 교수 강의 평가제같은 것에는 소극적이면서, 2년제 대학 교수들까지 SCI 논문경쟁에 몰두하고 학회를 난립하는 등 겉은 화려하고 속은 부실한 외화내빈 현상이 이공계 대학에도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학부생들은 전공과목은 소홀히 하면서, 취업을 위한 영어, 어학연수, 고시,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또한 '입학=졸업'인 느슨한 학사관리로 인해 명문대 입학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에, 초중고 교육이 온통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한술 더 떠 이과 지원자는 날이 갈 수록 줄고, 그나마 우수 이과생들의 절대 다수는 이른바 '의치한약수'에 몰려, 전통적인 이공계 대학은 고사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2. 이공계 대학교육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먼저 구태의연한 대학교육 내용에 대한 새로운 지식 수혈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최신의 제품개발이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회사와 연구소의 박사급 연구원들을 겸임교수나 전담 강의교수 형태로 대학에서 대폭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수들의 연구연가 제도를 활성화시켜, 필요하다면 2-3년간 기업체나 연구소, 정부기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외국 대학졸업자에 비해 부족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기획능력과 팀워크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팀단위 토론과 과제수행 제도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무에 크게 도움이 되는 체계공학(System Engineering), 과제관리(Project Management), 품질보증(Product Assurance; Quality Engineering), 보고서 작성 및 작문기법, 브리핑기법 등을 대학에서 교육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한 국내 대학원이 살아남으려면, 국방관련 연구소나 전략기술 연구소 등을 대학에 설치하여 해외에서 돈주고도 사올 수 없는 전략 기술과 지식의 메카 역할을 해야 합니다. Caltech의 JPL, MIT의 링컨랩, 미시건대의 ERIM과 같이 수백-천 명의 연구원을 둔 대학부설 연구기관이 우리나라도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대학원생 위주로 구성된 취약한 연구인력 대신, 연구교수나 전담 연구원이 중심이 된 강력한 연구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국내 대학(원)은 벤처기업의 산실로서도 기능하여야 합니다. 스탠포드대와 같이 벤처기업의 산실이자 벤처로 인해 성공한 대학이 우리나라에서도 여럿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대학(원)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연구중심 대학원과 취업중심 대학으로 크게 이원화하여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연구중심 대학원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인재육성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수준과 강도가 매우 높은 교육을 실시합니다. 정부(또는 위원회나 Agency)는 각 전공별로 우수 대학원을 5곳 정도 선정하여 집중지원함으로써 경제적 어려움이 전혀 없이 교육과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로써 KAIST 설립취지가 그랬듯 고급두뇌 해외유출을 실질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 수준의 고급인력은 많을 수록 좋기 때문에, 연구중심 대학원의 정원은 큰 제한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음, 다수의 일반 대학은 산업경쟁력을 가진 인력양성을 목표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 졸업후 곧바로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여, 높은 취업율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평생 교육원으로서 대학(원)을 운영하여 산업현장에 필요한 재교육을 담당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또는 위원회나 Agency)는 산업별 인력수요를 정밀하게 조사하여 각 전공별로 적정인원만 배출될 수 있도록 정원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편 한동대학 등 일부 지방대학들이 맞춤형 현장교육을 하여 높은 취업률을 유지하는 것을 새정부의 지방대학 육성방안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현재 일부 명문대 위주로 설치되어 있는 국방부의 특화연구센터를 지방대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중심 대학원들은 학부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애고, 전국의 모든 대학에 문호를 개방하여 학벌해소에 앞장서야 합니다. 과거 학부없이 대학원중심으로 운영되던 KAIST가 이공계 대학들의 학벌해소에 큰 기여를 한 바가 있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전공연구에도 바쁜 대학원 생활의 특성 때문에, 대학원 파벌은 학부나 고교에 비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새 정부의 학벌차별 해소와 관련하여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3. 이공계 대학 외적인 해결책, 의학대학원 설치
우리나라는 인구 천명당 의사수가 1.3명에 불과해 OECD 평균치인 2.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고, 29개 OECD 조사대상 국가 중 28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의대 정원마저 3300명으로 동결되면 만성적인 의사 부족문제는 해결될 전망이 어두운 상황입니다. 또한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등의 선진국을 보더라도 의사는 변호사, CPA와 더불어 여전히 인기있는 직종이며, 이공계 연구원과 더불어 고소득 전문직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약분업에 따라 개업의들의 실질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하여, 동급의 과학기술자들의 10배를 상회하여 이공계 기피의 한 원인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과학고생을 비롯하여 대다수 학부모들의 인식에 신속히 반영되어 현재는 사태를 돌이키기 힘들만큼 의학계열과 이공계간 인력불균형이 깊어진 상태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종합적인 해결방안은 우수 이공계 대학교에 의학대학원을 다수 설치하는 것입니다. 경쟁률이 높고 선호도가 매우 높은 직업에 대해서는 공급을 늘려주는 것이 당연하며, 의사 자질 저하나 의료비 지출 증가를 의료계 일각에서 주장하지만 현실성이 없습니다. 현재 절대 부족한 기초의학자, 비인기 학과 전문의, 지방이나 오지의 의료진, 그리고 과로에 시달리는 수련의 문제 등의 해소에는 공급을 늘리는 것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공계 학부, 특히 물리, 화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 분야에 인재가 몰리게 됩니다. 또한 의사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선호문제도 해소되어 직업의 평등성 회복도 가능해지게 됩니다. 여전히 이공계 대학원과 의학 대학원이 경쟁하는 문제는 있겠으나, 일단 우수 인력이 이공계 학부로 많이 몰리는 이상 전반적으로는 우수 인력이 이공계 대학원에 많이 진학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미국의 경우처럼 법학 대학원과 경영 대학원 중심체제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경영 대학원에는 이른바 머리가 좋은 이공계 학부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법학 대학원에도 특허 변호사로 활동하려는 이공계 학부출신들이 진학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제 이공계 대학의 교육 목표가 전통적인 회사원, 연구원 양성이 되어서는 안되며, 이게 변하지 않는다면 포부가 큰 인재들에게 이공계는 앞으로 더욱 더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이공계 대학은 경영인, 매니저, 의사, 변호사, 관료, 언론인, 정치인 등 우리 사회를 리드해나갈 사람들의 필수코스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회사원, 연구원 양성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어진 문제만 푸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동적인 인재, 그리고 하나의 사회적 부속품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역동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이공계 인력을 양성해내야 합니다.
새 정부들어 이공계 대학들이 화려하게 변신하여, 제 2의 과학기술입국을 대학이 주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www.scieng.net) 운영위원 임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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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출신 친구들이 다른 분야에 많이 진출해서 합리적인 사고로 일해준다면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