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던트족 대학가 점령
http://ucc.media.daum.net/uccmix/news/society/education/200503/11/mk/v8566178.html?u_b1.valuecate=4&u_b1.svcid=02y&u_b1.objid1=16602&u_b1.targetcate=4&u_b1.targetkey1=17127&u_b1.targetkey2=8566178
고시 열풍처럼 신분 상승을 위한 몸무림인 것 같다.
하지만 고시보다는 훨씬 나은 현상임에 틀림없다.
고시는 합격/실패 중심의 간판이라면
대학원은 뭔가 배우는 게 더 많을 테니까.
이런 것을 간판 따기로만 생각하면 안된다.
평생 교육으로 가는 과도기적 시기라고 보고 접근해야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20대 후반까지만 공부하고 남은 50년을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변하는 세상과 지식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남은 50년을 못 따라오는 성인들을 도태시킬 수도 없다.
출산율이 감소하기 때문에 그 뒤를 채워줄 사람이 없다.
결국 40대 이후 사람들을 재교육시켜서 20대가 할 일을 다시 시켜야 한다.
같은 직업의 일일 수도 있고 사회 다른 분야의 부족한 곳일 수도 있다.
과거의 전직이 경쟁사로의 전직, 수직적 윗 방향으로의 승진이 었다면
이제는 수평적인 전직이 필요하다.
공무원에서 프로그래머로
프로그래머에서 환경미화원으로
환경미화원에서 군인으로
군인에서 의사로
의사에서 선생님으로
코볼 프로그래머에서 C 프로그래머로
C 프로그래머에서 C++ 프로그래머로
혹은 그 반대로.
사회의 인력을 pooling해서 교육 cycle에 왔다갔다 하게 만들면서
부족한 분야가 있으면 투입이 가능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부족히 예상되고나서 2~3년의 재교육 시간이 걸린다.
사회를 피라미드형 구조가 아닌 순환적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피라미드식 계급 구조는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리지만
순환적 구조에서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한 사람이 그 회사에서 근무할 기간이
2~3년 밖에 안된다면 20대를 신입사원으로 고용하든, 50대를 신입사원으로 고용하든 상관없다. 평생 직장시대에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수십년간
한 회사에서 봉사할 것을 가정하기 때문에 젊을 수록 투자가치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50대라고 2~3년 뒤에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피해는 없다.
오히려 인재가 부족할 때 좋은 대체 풀이 되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이 창의적이 부족하고, 적응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데,
그것은 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그런 식으로 계속 바뀐다면 50대도 20대만큼 유연하고 진보적으로 바뀔 것이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압력이 있으니까. 바뀐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새 직업과 직장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만 늙은이로 가득차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수도 있지만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마찬가지다.
인재를 못 구해서 쩔쩔 매느냐, 나이든 사람이라도 구하느냐의 차이다.
나이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회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 사회의 특징은 장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 분야를 수십년 한 사람이나 2~3년 배운 사람이나 큰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수십년 종사한 사람은 소수의 엘리트만 있으면 되고 대부분의 사람은 2년을 있으나 20년을 있으나 거의 비슷한 실력을 보여 준다.
따라서 재교육을 받고 다른 일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
출산율이 저하되면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데,
출산율을 올리지 못할 바에는 사람들을 역동적으로 바꾸면 된다.
늙은 사람을 교육하고 문화를 바꿔서 젊게 만들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 다.
70대가 힘없는 노인이 되는 이유는 늙어서 기력이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안 주기 때문이다.
나이들어서도 일을 하는 정치인 같은 경우는 늙은 바보가 되기 보다는 늙은 여우가 되어 정치에 더 고수가 되어있다.
세상 사람들을 늙은 여우로 만들어야 한다.
참고)
피터 드러커 - 프로페셔널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