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누구나 할머니가 있지만, 과연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 얼마나 알고 있나?
우선, 그 분에게는 손자/손녀가 10명이 넘는다. 너무 많아서 사실 몇 명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손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식들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나는 나이가 가장 많은 손자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29년간의 시간이 있었고, 가장 어린 손자에게는 시간과 기회가 별로 없었을 테니. 할머니께서 과연 그 많은 손자/손녀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실지도 의문이지만, 확실히 내 이름은 기억하시니까.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에 나는 확실히 유리했다.
명절 때 손자들에게 일을 시키시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가셔서 뭔가 만들어 오시는 데, 뭘 하시느라 그렇게 바쁜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보기에는 시골이라 나가도 아무것도 없고, 방에서 TV만 보는 날이다. 마트가면 그냥 떡을 사올 수도 있지만, 할머니는 직접 쌀을 불려서 방앗간에 맡기고 그걸 다시 떡집에 옮겨서 떡으로 만드는 일을 매년 하셨다. 모든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우리 세대와는 다른 듯. 우리 세대의 음식 만드는 방법이란 그냥 가게에 가서 돈을 내는 것. 사실은 그래서 명절때 할머니는 평소보다 훨씬 바쁘시기 때문에 이야기할 시간과 기회가 없다.
할머니가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건 사실이지만, 도무지 대화가 될 수는 없었다. 할머니께서 말하는 인사말들은 당연히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데, 농사나 일상에 관련된 내용들은 사실 잘 모르겠다. 논 한마지기가 얼마나 큰 건지, 고추는 언제 뿌리고 거두는 지, 어떤 방식으로 동네 사람들과 품앗이를 하는 지, 밭이나 양파공장에서 알바를 하실때는 임금을 어떤 식으로 받는지,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를 명절마다 20년 이상 열심히 들었지만, 여전히 해독 불가능.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때도 할머니와 손녀들의 입장은 다를 때가 있다. 사자 5마리가 코끼리를 공격할때, 손범수 아나운서의 해설과 손녀들은 대게 코끼리(약자)의 편. 불쌍한 코끼리가 잡혀먹이지 않고 잘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바라고 있다. 반면에 할머니는 손녀들을 깜짝 놀래키실때가 있다.
"아이고, 이 놈의 코끼리, 토실토실한게, 짐승들(사자들)이 뜯어먹고도 닷새는 먹겠네."
뭐 이런 식일때가 있다고. 할머니는 사자의 편이라고. 어느날 필요하면 집에 키우는 돼지 같은 가축들을 그렇게 잡아서 요리해서 자식들에게 나눠줘야 하니까.
그리고 할머니의 사투리는 광주(전라도)에서 태어난 나도 해독이 안됨. 억양은 어쩔 수 없지만, 학교에서는 표준어만 가르치니까.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신 것도 아니고, 언어를 할머니나 부모님이 많이 가르치시는 건 아니라서.
젊은 남성인 나는 닭이나 뱀을 잡을 수 없지만, 70이 넘으신 여성인 할머니는 하실 수 있다. 닭이든 뱀이든 다 사람 먹는 거고, 잘 요리해야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지난 30년간 부모님께서도 내가 미성년자일때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 설명할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시기 때문에, 이제는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더 잘 알때도 있다. 할머니께서 어느 밭이나 양파공장에서 알바를 하셨을 때, 임금 체불이되는 경우가 있다고 치면, 그걸 10대의 손자에게 설명해주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그런 일이 흔하니까.
할머니가 생각하고 사는 세상은 확실히 내가 사는 세상과 달랐다고. 같은 공기를 숨쉬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가족이지만. 오줌이 마려워서 어느 명절날 새벽에 일어났는 데, 아무도 몰래 혼자 우울가에 물을 떠놓고 기도하고 계시다든지. 모기가 자꾸 여기저기 물어서 나는 잠을 잘 수가 없는 데, 할머니는 크게 코를 골면서 주무신다든지. 나는 손자지만 남자니까 커다란 밥상에서 아버지, 삼촌들과 밥을 먹지만, 할머니는 그 집의 주인이고 가장 나이드신 어른인데도, 부엌에서 몰래 먼저 혹은 나중에 웅크리고 밥을 드신다든지.
할머니와의 스토리는 그렇고, 외할아버지와의 이야기도 비슷한 것들이 있다. 외할아버지의 세상은 일제시대, 6.25 혹은 새마을운동 초반이기 때문에. 항상 그쪽의 이야기. 내가 가장 구경하고 싶은 동네가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울 할아버지가 가고 싶은 곳은 백두산, 만주, 금강산, 제주도 혹은 도쿄.
무안 국제공항이 들어설때, 내 이야기는 그런 곳에 지어봤자 누가 비행기를 타나 하는 생각이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거기는 일제시대에 군용비행장이 있던 곳이니 지금도 거기에 지을만 하다라는 것. 사실 한국이나 동북아시아의 지리나 지형은 할아버지께서 잘 아시지.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지형이 중요한 전공도 아니고, 어차피 사람들은 다 도시에 특히 서울에 사는 거니까. 대구가 분지지형이건, 안성에서 옛날에 안성맞춤 뚝배기를 만들었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이제는 플라스틱으로 모두 중국에서 완벽하게 똑같이 만드니까.
두서없긴 한데, 만약에 30~50년 뒤에 내 손녀나 손자가 나에게 내 조부모는 어떤 사람인지, 기억나는 게 있냐고 물어보면 들려줘야 하니까 한 번 적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