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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기계공학부 자유게시판에 김종원교수님이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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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한 학기가 끝났다. 이제 곧 자네들은 나름대로의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 학교를 떠날 것이다. 그런 자네들에게 이번 여름에는 필히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만들고 돌아 오라고 외치고 싶다.

자네들은 곧 이 교정을 떠나서 사회로 나갈 것이다. 대학원을 진학하든 산업체에 취직을 하든 그것은 당장 눈 앞의 진로일 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네들이 과연 20년 뒤에 자기가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과 연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학부생들이 그러한 꿈과 비전이 없이 이 순간 그저 학기말 고사나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네들은 과연 학기말 고사 공부를 하는 정도의 시간과 노력만이라도 자네들의 꿈과 비전을 굳히기 위해서 투자를 해보았는지 잘 모르겠다. 한번만이라도 대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엔지니어 출신의 CEO가 쓴 책을 읽고 나도 20년 뒤에는 바로 이런 모습이 되고 싶다고 꿈꾸는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저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현실에 좌절하면서 20년 뒤에는 없어지겠지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점점 더 포화 상태로 치닫는 경제 현실에서 아무런 꿈과 비전 없이 그저 친구들이 하는 말이나 신문에서 떠드는 피상적인 기사에 자네들의 소중한 미래를 맡기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된다.

서울공대에 와서도 여전히 평균적인 위치의 엔지니어의 모습을 자네들의 미래의 소박한 꿈으로 삼고 나도 20년 뒤에는 혹시 회사에서 짤려나는 것은 아니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졸업을 기다리지나 않는지 걱정이 된다. 왜 자네들은 서울공대생으로서 20년 뒤에 top 1% 이내에 드는 CEO, 전문 연구직, 교수, 창업가 등을 꿈꾸지 않는가? 왜 자네들은 지금 이 순간 자네들 나름대로의 큰바위 얼굴을 그리지 않는가? 왜 사회 현상만 탓하고 있는가? 과연 자네들은 얼마나 자기 자신의 꿈과 비전을 확실히 세우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던가?

20년 뒤의 자기 자신의 모습, 즉, 꿈과 비전이 가슴 속에 확실하게 없는 상태에서 지금 죽을 힘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면, 결국 평균적인 위치의 엔지니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서울대를 없앤다고 난리를 쳐도 자네들은 top 1% 엔지니어가 되어 리더그룹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리더가 필요하다. 나는 자네들이 바로 이런 리더가 되기를 원하며, 그런 리더가 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엔지니어로서 20년 뒤의 자네 모습으로서 결국 다음과 같이 크게 다섯 종류의 모습을 꿈꿀 수 있다:

- [대기업 CEO] Global top class 대기업의 CEO 또는 핵심 중역이 되어 활동한다.

- [창업가] 기술 기반의 top class의 세계적인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엄청난 돈을 번다.

- [전문연구직] 세계적인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팀장으로서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 [교수] 세계적인 대학교에서 훌륭한 교수가 되어 교육과 연구에 몰두한다.

- [전문행정직] 공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top class의 변호사가 되거나 정부 관료가 되어 기술문제가 개입된 법적 소송을 처리하거나 중요한 국가 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한다.

여기서 제발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나 하는 멍청한 소리를 좀 하지 말기 바란다. 큰바위얼굴 소년은 자기가 큰바위얼굴이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다면 도대체 자네들은 20년 뒤에 무엇이 될 것이냐고 묻고 싶다. 축구 선수는 골대가 있기 때문에 90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공을 찬다. 자네들은 A학점을 꿈꾸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서 시험 공부를 한다. 고등학생들은 서울대 합격하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한다.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은 결국 모두 다 공을 넣는 것은 아니고, 시험도 다 잘 보는 것은 아니며, 서울대말고도 다른 대학도 많은데 왜 내가 죽을 힘을 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실패를 두려워 하면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가야 하며, 결국 아무런 목표가 없이 살아가도 결국 20년 뒤에 어떠한 모습으로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놈의 인생은 단 한 번의 기회 밖에 주지 않는다. 자네는 이런 이유로 그냥 그렇게 살다가 20년 뒤에 그냥 되는대로 살면서 그 때도 여전히 이 놈의 사회가 이래서 안 된다고 푸념할 것이냐? 그 때가서도 여전히 사회보고 책임을 지라고 할 것이냐?

위의 다섯 가지의 모습 중에서 어떠한 것도 자기 가슴에 공진과 같이 와 닿는 모습이 없으면 하루 속히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래 다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학기말 고사 준비하는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위의 다섯 가지 길을 간 사람이 쓴 책도 읽고 인터넷도 검색하고 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자네의 꿈과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손톱만큼의 노력은 해보았는지 하는 것이다.

혹시나 부모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그저 지나가면서 던지는 그 한마디에 엔지니어로서는 나는 이런 모습이 될 것이야 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그저 언론에서 걱정하는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서 자네도 같이 걱정하며 주저앉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이공계 기피 현상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자네들의 꿈과 비전이 없음이 더 걱정이다.

도대체 자네 인생은 누가 살아 주는가? 친구가, 부모가, 신문이? 도대체 자네의 꿈과 비전을 누가 만들어 주는가? 친구가, 부모가, 언론이? 꿈과 비전은 참으로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역학 문제 풀듯이 unique한 정답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제발 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위의 다섯 가지 길을 가고 있는 현재의 선배들이 쓴 책들을 위인전처럼 읽거나, 인터넷을 뒤지거나, 직접 인터뷰를 해서라도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각각 그 길로 갔으며, 지금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를 바란다 (첨부 목록 참조).

대기업 CEO, 창업가, 전문연구직, 교수, 전문행정가 등의 다섯 가지 모습에 대해서 적어도 각각 세 사람 정도를 정해서 철저하게 그 사람에 대해서 탐구를 해보라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를 모르고 어떻게 창업가가 되겠다고 할 것이며, 화성 탐사선 프로젝트 팀장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르고서 어떻게 전문연구직이 되겠다고 할 것이냐? 성공한 창업가가 돈을 과연 얼마나 버는지 자세히 알고는 있느냐? 빌 게이츠가 돈 많이 버는 것은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그 밖의 창업가는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알고는 있느냐?

다섯 가지 길을 간 사람들의 모습을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자네들 나름대로의 20년 뒤의 모습이 그래도 더 확실하게 잡힐 것이다. 이것은 마치 5명의 여자 또는 남자 친구 후보들 중에서 누구를 마지막에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과 같다. 각 5명을 만나보고 이야기 해보고 해서 점점 더 잘 알수록 이 여자 또는 남자야 말로 정말로 내 친구로 삼고 싶다 하는 마음이 확실해 진다. 그런 노력도 없이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어떻게 결정을 하겠느냐? 자기 나름대로의 꿈과 비전을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절대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도의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결정이다..

그 꿈과 비전은 가슴 벅찬 그런 것이다. 그러나, 실현하기에는 지금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아 정말로 나는 이런 굉장한 모습이 되고 싶다 하는 그런 것을 찾아야 한다. 술 먹고 방 구석에 쳐 박혀서 천장만 쳐다보면 꿈과 비전이 가슴 속에 저절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벅찬 꿈과 비전을 생각하면 바로 1ms 정도나 되겠나하는 찰라의 순간 후에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단칼을 내리치게 된다. "니가 무슨 그게 되겠냐? 너는 이러 이러한 성격이고, 돈도 없고, 경쟁이 심한데 그게 되겠냐구. 그 사람은 천재이어서 그렇게 되었지, 네가 무슨.." 이런 식의 단칼이 자네의 꿈과 비전을 무자비하게 박살낸다. 그것은 일종의 열등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서울대생이면 말은 안하고 있지만 열등감은 더 강할 것이다. 내가 바로 그랬으니까. 명문고와 서울공대에 박사까지 했지만 오히려 우수한 놈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기가 죽을 때가 더 많았으니까. 심지어 잘 노는 놈에게도 열등감을 느낀다. 자네들도 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서울대에 들어 온 이유이다. 모두 다 결국 자네를 도와 줄 인적 자원이다. 그래서 그런 단칼을 바로 하나 "아직 해보지도 않았지 않았냐. 해 보고나서.. 죽을 힘을 다 해서 해보고 나서, 그 때 가서 결과를 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꿈과 비전을 세우는 것을 박살내는 그 단칼을 바로 박살을 내야 한다. 세상에 가장 멍청한 것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이다. 해보지도 않고 이 꿈 저 꿈 잘라버리다가는 남는 것이 없다. 결국 그럭 저럭 살다가 아무리 서울대 나와도 평균치기 something이 되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꿈과 비전을 미리 잡고 그러면 죽을 힘을 다하게 되며 그러면 실현 불가능하게만 보여 졌던 꿈과 비전을 결국 실현하게 된다. 죽을 힘을 다했으니까..

이번 여름방학 동안에 영어 회화 공부나 해야 하겠다고 하는 계획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여름 방학 끝나고 학교로 돌아 올 때에는 이 가슴 속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게 각인된 그런 꿈과 비전을 새기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런 꿈과 비전이 확실하면 2학기에는 무슨 과목을 수강할 지부터 시작해서, 군대는 언제 어떻게 가고, 대학원을 갈 것인지, 유학을 갈 것인지, 회사는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할 것인지 등등의 모든 결정이 쉬워질 것이며, 그 보다도 더 지금 이 순간 자네가 하고 있는 모든 공부와 사회활동에 대한 의미가 생기며, 비로소 고등학교 3학년 때처럼 또다시 미래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 해야 하겠다고 하는 동기가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도대체 영어 회화 공부는 왜 하려고 하는가? 토플 토익 성적 높이려고? 이런 동기로 영어 공부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지만, 20년 뒤에 Global top class 대기업의 CEO로서 세계 각국에서 집결된 임원급 회의를 할 때를 위해서 영어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자네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자네의 특권이다. 그런데, 서울공대생인 이상 그러한 찬란한 미래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의무 사항이기도 하다. 그것은 군대 가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자네들에게 지워지는 무거운 짐이기도 한 것이다.

구분 제목 저자 옮긴이 펴낸곳
교수 대학교수 되는 법 와시야 고야타 유리 생각의 나무
교수 Genious: Richard Feynman and Modern Physics James Gleick
창업가 경영적 인간 경제적 경영 : 빌 게이츠 & 손정의 김선영 민중출판사
창업가 못말리는 CEO 스티브잡스 앨런 도이치먼 안진환 영진Biz.com
창업가 빌 게이츠 - 한권으로 읽는 비즈니스 세계의 거장들 03 로버트 헬러 형선호 황금가지
창업가 손정의 형식타파를 위한 결단 오시타 에이지 박선영 삼각형북스
창업가 세븐일레븐의 경영신화 이토 마사토시 남혜승 집사재
창업가 스타벅스, 커피한잔에 담긴 성공신화 하워드 슐츠 김영사
창업가 휴렛팩커드이야기 데이비드 펙커드 유영수 중앙M&B
창업가 열쇠-내일을 여는 사람들 조영일 야스미디어
CEO 끝없는 도전과 용기 잭 웰치 이동현 청림출판
CEO 도요타의 최강경영 시바타 마사하루, 가네다 히데하루 고정아 일송미디어
CEO 르네상스 카를로스 곤 오정환 이레
CEO 베네통이야기 루치아노 베네통 명진출판
CEO 한국의 CEO 20 최홍섭 더난출판사
CEO 소로스 마이클 T. 카우프만, 조지 소로스 김정주 Best In Korea
CEO 세계를 변화시킨 기업 33 하워드 로스먼 고정아 명진출판
CEO 아이아코카 자서전 - 영한대역문고 23 Lee Iacocca 시사영어사
CEO 월마트의 고객은 사장이다 모리 다츠오 체인스토아 편집부 한국수퍼체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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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the CEO;who are they? Ray Smilor 심현식 시대의창
CEO 세계 최고의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 조지 앤더슨 이중순 해냄
CEO 공학에 빠지면 세상을 얻는다 서울대 공과대학 동아 사이언스
전문연구직 인터넷을 통해서 연구소에서 대형 프로젝트 팀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쓴 글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탐색해서 읽어 볼 것. 예를 들어서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우주왕복선 개발', '화성 탐사선 오퍼튜너티 개발' 등등 - 이러한 프로젝트의 팀장은 누구였으며, 그들의 경험을 쓴 책들을 찾아서 읽어 보고 전문연구직을 꿈꿀 것.
어떤 놈이 이런 약을 만든단다.
요즘은 갈수록 과학, 기술이 싫어진다.
나도 유나바머가 되버릴 것만 같다.
결국 잠을 줄이는 건 그만큼 휴식이 줄고 혹사당할 시간만 느는 게 아닐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로 인류는 수면시간도 줄고
근무 시간이 너무 늘어난 것 같다.

산업화와 기계문명 따위가 가져다 준건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적게 일하는 게 아니라 양극화만 가져온 건 아닐까?
일이 없는 사람은 돈도 없고 그냥 방에 아무것도 못하고 박혀있고
일하는 사람은 하루 10시간도 넘게 혹사당하고.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56&article_id=0000044038§ion_id=105§ion_id2=228&menu_id=105
이제야 연구원들이 왜 미국간다는 지 알았나보다.
'기술 유출'이라고 떠들다니.
'생존권 보장', '고용보장'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헌법에 보장된 자유가 있는 데, 거주지, 국적, 직업선택은 인간의 기본권이지.
난치병 치료고 뭐고 자신도 굶어죽게 생겼는 데, 장난치나.
특허도 안주고 월급도 안 올려주는 데, 뭐하러 라면황씨 밑으로 다시 가나.

인턴, 레지던트도 일종의 학생이지만 의료 활동을 하고 있으니 200만원 월급도 적다고 하는 판인데,
같은 학생이면서 연구를 하는 석사, 박사, 포닥은 뭔지 모르겠다.
40~100만원 받으면서 참으면 나중에 많이 줄꺼라고 생각하나보다.
이공계도 학부 때 미시경제학 쯤은 교양 필수로 들어야 한다.
어디 노동조합 만들어서 파업은 못 하나?

나도 대학원을 가기는 하겠지만 교수에게 인생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뭐든 다 시키고 공부시켜서 졸업시키고 인생을 책임져 줄 것 같아 보이지만 별거 없다.
결국 자기 일은 자기가 챙겨야지.
3년 사회생활에서 배운 것은 직장 상사든 선배든 교수든 내게 도움이 약간 되기는 하지만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점이다.

[기사]유럽 - 프랑스 소요사태

2005. 11. 8. 13:04 | Posted by 속눈썹맨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824&hotissue_item_id=17630&office_id=038&article_id=0000305392&section_id=7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824&hotissue_item_id=17637&office_id=022&article_id=0000129010&section_id=7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824&hotissue_item_id=17644&office_id=025&article_id=0000581253&section_id=7


올해 여름 유럽 여행 가기 전에 들었던 세미나에서 처럼
정말 유럽이 점점 살기 험악한 곳이 되고 있나보다.


그 때는 전반적으로 도둑, 집시를 조심하라고 했었고
네델란드에서는 마약, 독일에서는 네오 나치(스킨헤드),
이탈리아 남부는 폭력배들이나 동네 양아치(10대들),
프랑스에서는 밤에 프랑스 강북의 강도, 추행범들.


그 후로 내가 여행다니던 기간에 폭탄 테러 2번 났었고
이번에는 프랑스 소요사태로 주요 관광지 교외를 방화했나보다.
(범인들은 무슬림이나 제국시대부터 천대받던 흑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직업도 없고 언어도 달라서 의사소통조차 안되고 지원도 안해주나보다.)
2개월 전에 내가 관광하러 돌아다녔던 곳들도 꽤 보이네;;


그리고 사실 배낭여행객들이 묵는 곳들이 역 근처나 한인 민박들인데,
다들 빈민가나 게토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가보면 그런 곳에는 백인보다는 유색인들이 많고 소외받고 있다는
느낌이 꽤 든다.
부서진 자동차, 지저분한 골목길, 할 일 없이 길가에 앉아있는 패거리들,
민박집 옆 집도 철거중이라서 정신 없었다. 빈집도 있었고, 경찰도 한 번 출동한 듯.
관광지는 그래도 사람도 많고 경찰도 꽤 많아서 안전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01&article_id=0001135598&section_id=103&section_id2=245&menu_id=103


마케팅 원론 수업에 따르면 사실 이런 기사들을 쓰는 이유는 물건을 팔기 위해서이다.
마케팅을 하려면 고객들을 규정하고 시장을 세분화 해야 하는 데,
고객들이 도저히 규정되지 않을 때는 이런식으로
강제로 고객층을 만들고 사람들을 drive하는 방식을 쓰면 된다.


말하자면
"너는 X세대야. 그러니까 이런저런 특성을 가져야 하고
우리는 그에 맞춰서 이런 물건을 만들테니, 너희는 사야만해~"
"여기 새로운 유행이 있어, 이걸 안사면 얼뜨기가 되는 거라구
 봐~ 얼마나 멋져? 맞지? 그럼 다음 달에 꼭 사야 하는 거야."


보통 이런 기사를 내는 곳을 보면 기사들이나 **기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곳들이 바로 마케팅 업계에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기획은 주로 광고를 하는 데, 구체적인 상품만 홍보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고객들을 미리 drive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기사들이 힘을 가지는 이유는 저 글을 쓴 기자나 저자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읽어주는 대중(패션잡지, 여성잡지 독자들)이 많아서 그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올 때 발휘되는 것이다.

[펌]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2005. 10. 24. 04:21 | Posted by 속눈썹맨












의존성 : 14 점 자기애 : 42 점

















































당신의 연애 실패 이유: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심성을 가진 당신에겐 약점이 있다. 당신은 너무 소심하고 밋밋하게 연애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실패한 연애든 제대로 하는 연애든 별 차이가 없다. 당신 애인의 입장에서는 당신의 이런 태도가 성의가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며 그러다 보면 불만이 쌓이고 결국 헤어지게 된다. 인생에서 가끔은 온몸을 던져가며 모험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연애도 그 중 하나다. 사랑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으면 별다른 감흥도 없고 서로가 노력을 하지 않으면 관계에도 진전이 없다. 그러다 보면 연애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었던 수많은 별세계를 그냥 놓쳐버리는 것이다. 연애를 한다고 아주 행복하지도 않고 실패한다고 해서 아주 불행하지도 않아 하니 남들이 보기엔 도에 통달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조화와 균형에서 오는 안정감이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당신은 독립적인 사람이지만, 거만하거나 자기 중심적이지는 않다. 사랑을 하더라도 사랑에 전적으로 목매거나 애인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것이 당신을 매력적이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개인주의적인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을 우습게 여기거나 잘난 척 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고, 과거나 미래에 속박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연애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며, 실연을 하더라도 가장 잘 회복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다.


 

안정성은 그 이면에 정체되고 침체된 분위기를 담고 있다. 당신은 인생에 대해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조금은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삶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대충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삶은 점점 더 위축되고 어두워지며 볼품없어 질지도 모른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그 밋밋함이 당신을 외롭게 만든다.
그렇다. 당신은 자기 자신이 아주 대단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당신이 하는 연애도 역시 지금까지 무수히 반복되었던 사랑 이야기 중 하나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범한 사랑이 당신과 당신 애인을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아이러니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이 그리 대단치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당신. 인생이나 연애에 대해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생의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연애도 당신이 거기에 투자하는 만큼 돌려준다는 것이다. 연애는 당신의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황홀과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기회이다. 연애를 통해서 당신은 아주 멋지게 변화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당신이 그 연애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있다. 누구 말처럼 인생은 요지경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다. 당신에게도 놀랄만한 기회가 언제든 찾아온다. 준비된 자만이 그것을 잡을 수 있다.



























 릭 블레인 (카사블랑카)
잉글리드 버그만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의 고전, "카사블랑카"의 남자 주인공. 2차 대전 당시 릭 블레인은 미국인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가 파리에서 일자(잉글리드 버그만 역)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파리가 나치에 점령 당하자 그는 일자와 함께 유럽을 벗어나려 하지만, 일자는 사랑한다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사라진다. 전쟁의 상처, 사랑의 상처에 충격 받은 릭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카페 아메리카"를 개업하고 이곳에 은거한다.

릭 블레인은 쉽게 말해 세상 풍파에 찌든 염세주의자다. 실패한 사랑에 상처 받고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해 진 것. 정치적 중립지역인 그의 카페엔 전세계 인종들이 다 모여 생명을 건 온갖 정치적 상업적 거래를 벌이지만, 그는 "나는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낸다. 이런 그를 바꿔 놓은 것은 갑자기 나타난 일자. 그녀는 혁명가인 애인의 탈출을 위해 포르투갈행 비자를 찾는다. 릭은 일자와 아직 사랑하는 사이임을 깨닫지만, 일자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한다. 일자와의 사랑은 결국 옛추억으로 전락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약하고 무능한 염세주의자가 아닌, 진하고 아름다운 인생 경험을 한 로맨티스트로 관객의 뇌리에 남는다.

 


 













 셰어 (Clueless)
제인 오스틴의 "에마(Emma)"를 각색한 2000년대 영화 "클루리스(Clueless)" 주인공이다. (헐리웃 청춘 스타인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역을 맡았다.) 셰어는 비버리 힐즈에 사는 세련되고 잘 나가는 부자집 외동딸. 세상을 언제나 가볍게 즐겁게 바라보던 순진무구 여고생 셰어는 어느날 예쁘고 잘난 자신이 아직도 "처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새로 전학온 잘생긴 남학생과 처녀 딱지를 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는데…

셰어는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와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지적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지만 누구에게도 의존적이지 않다. 어머니 없이 홀로 자란 셰어는 아버지와 양오빠와 친구들 모두를 챙겨줄 정도로 독립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그는 "처녀 딱지를 떼기 위해 섹스를 하려는 등" 주체성과 스스로 깨닫는 능력이 부족하다. 영화에서는 조시라는 양오빠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그녀의 부족한 점을 일깨워준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진실한 사랑이란 "처녀 딱지를 떼기 위해 섹스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남도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과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클루리스는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가장 잘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평범한 여성의 지적 성장을 흥미진진하게 잘 그려냈다.

 


 









 캐서린 (무기여 잘 있거라)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의 대표작, "무기여 잘 있거라(Farewell to Arms)"의 등장인물. 캐서린은 1차 대전에 참전한 종군 간호사로 육군 장교인 주인공 프레데릭과 연인 사이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소설의 전반에 걸쳐 매력적이긴 하지만 지극히 소극적이고 밋밋한 여성상으로 그려진다. 작품의 후반부, 캐서린은 군대에서 탈영한 프레데릭과 평온한 유럽 마을로 도망을 가지만, 그곳에서 행복한 순간도 잠시, 아이를 낳다가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케서린은 여주인공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드라마 상의 비중은 적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이 여성을 작품 주제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작품 내내 소극적이고 평범한 여성상을 보였던 캐서린은 마지막 자신이 죽어야 하는 순간, 죽음으로부터 초월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프레데릭은 전쟁이 주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어 목숨을 걸고 탈출했지만, 캐서린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두려움에 떨지도, 신을 찾지도, 애인을 찾지도, 경건해 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죽고 나면 프레데릭 당신은 어떻게 하지요"라며 그를 동정한다. 캐서린은 이런 사랑과 죽음 앞에서 초월적인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펌]성공한 기업 이렇게 시작했다.

2005. 10. 24. 03:48 | Posted by 속눈썹맨









성공한 기업, 이렇게 시작됐다: 포드, 월마트 외





대량생산이란 “표준”을 만든 기업, 포드 자동차(Ford Motor Company)


 


창업자: 헨리 포드 (Henry Ford, 1863-1947)



초등학교 졸업 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이 싫어 가출, 기계 공장의 견습공이 돼 이후 직공, 시계 수리공, 조선 회사의 직원, 자동차 레이서 등으로 일하면서 자동차 제조 기술 습득, 1896년 혼자 힘으로 자동차를 조립해 냄. 직접 자동차를 만드는 데 성공한 포드는 자동차의 상업적 잠재성을 확신하고 1903년 자동차 회사 설립. 그러나 이미 당시 미국에 자동차 회사는 500개가 넘었음. 포드는 자신의 회사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대량생산”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 자동차 대량생산 조립 공장을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임.


 


조립라인을 완성한 뒤, 포드는 제조 공정의 표준화, 부품의 통일화(그래서 언제든 교환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제를 통한 비용절감에 성공, 자동차 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추기 시작함. 이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오래된 목표를 달성함. 이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새로운 혁명이었으며, 오늘날 헨리 포드는 “20세기 대량생산 시스템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얻는다. (그러나 마케팅을 무시한 생산에만 집중된 전략, 기계적 대량생산에 의한 품질 관리 소홀, 단순한 모델에 집착 등으로 포드는 60% 가까이 됐던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점차 잃게 됨.)


 



 



대량생산만으론 먹고 살 수 없다, 고객 서비스의 선구자, 마쓰시다 전기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 (1894-1989.)



초등학교 4학년 중퇴. 집이 너무 가난해 열 살부터 애를 돌봐 주는 일을 하며 남의 집에 얹혀 살았음. 이후 자전거 수리를 배우고, 전기업체로 옮겨 일을 시작하며 가전제품 업계에 투신. 그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1917년 22살의 나이에 마쓰시다 전기회사 설립.


 


초기 제품인 자전거 램프를 발명해 시장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음. 이에 마쓰시타는 아예 자전거 램프를 자전거 상점마다 무료로 나눠주고 팔리고 나면 돈을 나누어 받는 “외상 직거래” 망을 만들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상점 앞에서 직접 스위치를 조작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백문이 불여일견” 마케팅을 창안,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함.


 


1925년 내쇼날이라는 상표로 제품 판매 시작, 이때부터 세계 최초의 “고객서비스” 개념 도입. 제품을 팔고 난 뒤에도 수리 반품 등을 책임지고, 물건이 품절되면 소비자에게 사과하고 주소를 적어 빠른 시일 내에 배송을 완료했다. “판매한 후 서비스를 잘해주면 그 사람은 평생 고객이 된다”는 마쓰시타의 기업 철학은 내쇼날 기업이 420억 달러 가치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함. (1990년에는 미국 헐리웃의 MCA 영화사까지 인수함.)


 


마쓰시타는 헨리 포드의 대량 생산의 방식에 고객 만족 서비스란 개념을 추가, 세일즈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1960년에는 업계 최초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해 직원만족이란 개념까지 도입함. (그러나 마쓰시다 전기는 2차 대전 때부터 군사무기 제작에 참여하는 등, 군국주의 기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음.)


 



 



장인정신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기업, 혼다 모터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1906-1991)



학력이 전무함.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자전거 가게에서 일했음. 16살에 동경의 자동차 수리 견습공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 업계에 투신. 자동차 수리 전문점을 차리고 카 레이서로 활약하기도 하다가 자동차 전문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결심, 30대의 나이에 공업고등학교에 청강생으로 입학, 내연기관 제작 기초를 닦는다. 1946년 내연기관 전문 제작 회사인 혼다 기술연구소 설립. 그는 이때부터 경영은 후지사와 타케오에게 맡기고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기술 개발에 전념한다.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서양회사와의 합작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으나 혼다는 합작을 거부,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전력을 다한다. 1959년 모터사이클로 미국 시장 진출해 초기 4년 동안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터사이클 절반 가량을 독식하는 등 세계 모터사이클 메이커의 대명사로 자리잡음. 1962년 자동차 시장에 진출해 시장 확장에 성공한다.


 


혼다의 경쟁력은 전통적으로 제품의 완벽성이었음. 수많은 자동차 기업들이 품질 제일주의를 외치지만 지금까지 어떤 기업도 혼다만큼 기술적인 완벽을 추구한 적이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혼다는 장인정신 하나로 세계 시장을 제패해 왔음. 극에 달한 기술력으로 혼다는 최근 항공기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로봇 아시모까지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함. 오늘날 혼다는 도요타, 마쓰시다 전기 등을 제치고 소니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가치 높은 브랜드로 인정 받고 있음.











성공한 기업, 이렇게 시작됐다: 시스코, 델 컴퓨터 외





사업은 아이디어나 기술이 아니라 “파는 것”이다, 3Com



창업자: 밥 메카프 (Bob Metcalfe)



제록스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던 밥 메카프, 1973년 서로 떨어져 있는 여러 대의 PC를 연결해 주는 일명 "PC의 인터넷" 이더넷(Ethernet) 발명. 세계 최초의 LAN 기술, 이더넷은 여러 대의 PC를 이용하는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 것이 분명했음.


 


메카프는 곧바로 제록스 연구소에서 퇴직, 자신이 발명한 이더넷 기술로 사업을 시작함. 그러나 그는 아이디어나 기술이 곧 사업의 성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3년 간의 “창업 공부”를 한 끝에 사업이 망하는 3가지 주요 원인을 정리함. 그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 첫째, 창립자의 오만(uncontrollable ego of the founder)
  • 둘째, 자금 부족(lack of money)
  • 셋째, 사업 집중력의 부족(lack of focus)

1979년 투자를 받고 자신의 네트웍 회사 3Com을 설립함.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직접 인텔과 DEC를 비롯한 IT 대기업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세일즈를 시작, 수많은 기업들을 3Com의 고객으로 만듦. 창업주 메카프의 노력으로 3Com은 1990년대 2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50억 달러 가치의 회사로 발전,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이 됨.


 


메카프는 명문대 출신에 미국 내 최고급 기술 연구원이었음에도 체면과 자존심 다 버리고 사업의 성공을 위해 세일즈에 모든 것을 걸었음. 그의 성공 사례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명하는 일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것”이라는 간단 명료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훌륭한 창업자가 훌륭한 CEO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코(Cisco)



창업자: 샌디 러너(Sandy Lerner), 렌 보삭(Len Bosack)



1980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원의 두 명이 학생, 샌디 러너와 렌 보삭이 자발적인 힘으로 LAN과 LAN 사이를 연결하는 라우터(router) 제품을 실용화하는데 성공함. 라우터의 실용화가 세상에 알려지자 수많은 연구소와 대학, 그리고 기업들이 라우터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에 문의하는 등, 라우터는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사업 아이템으로 부각됨.


 


보삭과 러너는 자신들의 힘만으로 라우터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 1984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집에 사무실을 차리고 시스코(Cisco)라는 회사 이름을 짓고, 라우터 제작에 들어감. 이들은 투자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70곳 이상의 투자자들로부터 거절당함. 결국 모든 것을 창업자의 손으로 조달, 필요한 돈은 신용카드로 꺼내 쓰고, 필요한 물건은 직접 만들어 씀. 시스코의 창립자들은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에 매달렸고, 하루에 식사 한번, 이틀에 샤워 한번으로 만족했음.


 


결국, 이들이 제작한 시스코 라우터는 e메일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입 소문에 의해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함. 시스코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 1987년 미국 최대 벤처 투자사인 세쿼이어(Sequoia)로부터 200만 달러를 투자를 받고 시스코는 전세계적인 네트웍 기업으로 성장함. 오늘날 인터넷을 구성하는 전체 라우터의 80%가 시스코 제품일 정도로 시스코는 인터넷과 네트웍 업계 최강의 인프라 기업이 됨.


 


그러나 샌디 러너와 렌 보삭은 훌륭한 CEO가 되는 데에는 실패, 자신들이 일으킨 회사에서 퇴출 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특히 샌디 러너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성격에 미숙한 “정치력”으로, 투자자, 이사회뿐 아니라 직원과도 사사건건 불화를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짐. (샌디 러너는 이후 유명 화장품 메이커 "어번 디케이"를 인수해 재기를 노림.)


 



 



단순화, 간소화, 자동화가 만들어 낸 신화, 델 컴퓨터(Dell Computer)



창업자: 마이클 델(Michael Dell, 1965년 생)



텍사스 대학에 다니던 19살의 마이클 델은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컴퓨터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는 주독야경 생활을 하는 컴퓨터 광이었다. 학점이 계속 곤두박질치자 그는 1984년 대학을 중퇴하고 1000달러로 자신의 회사 델 컴퓨터 창립함.


 


회사 설립 후 그는 자신이 직접 소비자로부터 주문을 받고, 자신이 직접 부품을 사다가 컴퓨터를 조립해 파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중개업자는 100% 배제, 비용을 최소화 하고 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추는데 성공함.


 


그의 이런 “직접 마케팅(Direct Marketing)”과 “맞춤 제작” 방식은 고객으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으며, 회사 측은 비용을 절감하고, 재고율은 0%으로 낮출 수 있었다. 델 컴퓨터의 매출액은 매년 50%씩 성장했고, 1988년엔 증시 상장, 2000년대엔 IBM과 컴팩 등을 제치고 오늘날 전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한다.


 


델의 직접 주문 생산 및 직접 마케팅 방식은 인터넷 시대에 진정한 빛을 발함. 인터넷 등 IT 기술이 발달된 뒤로 델은 고객에게 들어오는 모든 주문을 전산화 해 이를 직접 공장 생산 시스템에 전달, 모든 것이 자동으로, 아무 오류 없이, 초스피드로 소비자에게 배송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무엇이든 불필요한 단계를 제거하는 일에 상당히 흥미가 있었다”고 말하는 마이클 델의 집요한 간소화, 자동화 전략은 IT 시대에 최상의 효과를 거두었고,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500대 부자에 가장 어린 나이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성공한 기업, 이렇게 시작됐다: 아마존, 야후 외





새로운 시장 진출은 이렇게 한다, 아마존(Amazon)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



월 스트리트의 증권가의 억대 연봉 사원이었던 제프 베조즈, 1994년 인터넷 WWW의 사용량이 전세계적으로 일년에 2300%씩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 WWW를 이용한 사업을 결심함. 그는 인터넷에서 팔 수 있는 상품 중 가지 수가 가장 많은 것이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음. 책 소매업계에는 독점 기업이 없는 데다 수백만 권을 한꺼번에 파는 책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인터넷과 컴퓨터를 이용하면 미국 내 있는 수백만 권의 책을 한데 모아 팔 수 있고, 이는 엄청난 경쟁력이 될 것이라 확신함.


 


1995년 가족 친지로부터 투자를 받고, 세계 최초의 온라인 서점이자 인터넷 상거래의 효시인 아마존(Amazon, http://www.amazon.com) 설립. 처음엔 사이트를 구축하면서 돈을 아끼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함. 당시 아마존 직원들은 책상 살 돈도 아까워 헌 문짝을 조립해 책상처럼 만들어 썼다고 함. 당시 이 아마존 사이트에선 250만 종의 책을 검색할 수 있어 기존 가장 거대한 오프라인 서점보다도 100배 더 많은 물량을 제공함.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한 고객 관리 시스템, 제휴 프로그램 등의 디지털 마케팅 기술을 개발, 아마존을 e비즈니스 기술의 “모범 사례”로 만듦.


 


사이트를 열자마자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아마존은 1995년 51만 달러였던 매출이 1997년엔 1억 4700만 달러까지 늘어남. 1997년 18달러의 증시가로 주식 상장을 한 아마존의 주가는 1999년 여름 100달러까지 치솟아 베조스에 투자했던 사람들을 억만 장자로 만들어 줌.


 


베조스는 인터넷 서점의 가능성을 확신했으면서도 결코 섣불리 뛰어들지 않았음.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출판 업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서적 판매에 대해 정보를 얻으며 그들에게 조언을 구함. 시장의 선발 주자의 이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만하지 않았던 것은 성공적인 창업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음.


 



 



인터넷 비즈니스 역사의 이정표, 야후(Yahoo!)



창업자: 데이빗 파일로(David Filo), 제리 양(Jerry Yang)



스탠포드 대학원생 데이빗 파일로와 제리 양은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이 너무나 난잡하게 흩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 스탠포드 대학에 할당된 자신들의 조그만 학생 서버 공간에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방문할만한 웹 페이지를 분류 별로 모아서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함. 이것이 오늘날 포털 서비스의 시초이자 야후!의 모태였음.


 


이 사이트를 바탕으로 1994년 4월 최초의 인터넷 포털(portal) 기업, 야후(Yahoo!) 설립. 당시 야후는 사용자들이 드넓은 인터넷 공간에서 정보를 찾아 헤맬 필요 없이, 모든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는 포털에서 원하는 정보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줌.


 


1996년 IPO로 공개 기업 대열에 들어선 야후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함. 1997년 온라인 e메일 사이트인 로켓메일(rocketmail.com: 야후 e메일 서비스의 기반이 됨)과 커뮤니티 사이트인 지오시티(Geocities), 브로드캐스트닷컴(broadcast.com)를 비롯한 콘텐츠 사이트들을 인수, 사업을 다각화 함. 1998년엔 야후! 쇼핑, 야후! 옥션 사이트를 개설해 전자상거래 사업에도 뛰어들었고, 1999년 "야후 메신저(Yahoo Messenger)"를 출시를 계기로 통신 사업까지 진출함.


 


이렇게 야후는 e메일, 커뮤니티, 콘텐츠 사업 뿐만 아니라 온라인 쇼핑, 금융, 기업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더 이상 "WWW 정보 접근 및 검색 서비스"가 아닌, 수많은 사업 모델을 운영하는 "글로벌 온라인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남. 또한, 데이팅 서비스인 야후 퍼스널(Yahoo Personals), 구직 페이지(Yahoo Careers), 그리고 여행 중개 페이지(Yahoo Travel)와 같은 유료 서비스를 통해 수익원을 확충해 나감.


 


무엇보다 야후는 인터넷 사업체로는 최초로 회사 이름을 전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기업이었음. 1996년부터 야후는 "Do You Yahoo?"라는 마케팅 문구 아래 TV, 인쇄 매체, 길거리, 스티커 등에 야후의 이미지를 널리 퍼뜨리며 대대적인 브랜딩 전략에 나섬. 야후의 공격적인 브랜딩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야후는 오늘날 인터넷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로 성장함. 


 



 



인터넷 업계의 장인정신, 구글(Google)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래리 페이지(Larry Page)



스탠포드 컴퓨터 공학과 대학원생이었던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1996년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 기술 다른 거대 포털 사이트에 팔려고 했음. 자신들의 신용카드로 빚을 내 장비를 구입하고 검색엔진 개발에 주력했지만 구글의 기술을 사겠다는 업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브린과 페이지는 자신들의 검색 기술로 회사를 세우기로 결정. 10만 달러를 투자 받고, 이 돈으로 카드 빚을 갚은 브린과 페이지는 다시 부모, 친지, 그 밖의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100만 달러를 모금, 이 돈으로 1998년 “구글”이라는 회사를 설립, 검색 서비스를 개시함.


 


구글의 사업 모델은 “검색” 단 한가지뿐이었다. 검색엔진으로 시작한 다른 인터넷 기업들이 검색 기능을 기반으로 디렉터리, 뉴스, 커뮤니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탈 사이트로 발전한 것에 반해, 구글의 웹사이트에서는 오직 검색 창 하나로 사업을 전개함. 초기 구글은 트래픽을 늘리기 위해 아무런 마케팅을 하지 않았으며, 수익을 올리기 위해 광고를 유치하지도 않았음. 그들에게 최우선 과제는 오직 업계 최고의 수준의 검색엔진 기술을 만드는 것이었다. 검색 결과의 신속 정확함, 광고 하나 없는 깔끔한 사용자 환경 등, 오직 검색만을 위해 최적화된 구글 웹사이트 소문은 사용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고, 이후 급성장을 거듭, AOL과 야후 등에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수익을 얻기 시작함.


 


외부 기업에 검색 기술을 제공해 수익을 얻던 구글은 자사의 사이트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체적인 검색 광고 서비스를 제공, 엄청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함. 오직 검색만을 위해 태어난 구글은 미국 검색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이용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뉴스, 커뮤니티, 번역, 데스크 탑 검색 등의 서비스로 확장하기 시작함. 이에 기존 포털 업체인 야후의 위치마저 위협하고 있음.


 



 



온라인에서 재현된 그리스 민주주의, e베이(eBay)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Pierre Omidyar)



프랑스 태생의 피에르 오미디아는 부모를 따라 6살 떄 미국으로 이민, 미국 터프츠(Tufts) 대학에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공돌이”였다. 1988년 대학 졸업 후 8년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오미디아는 1996년 취미 삼아 이베이(eBay, http://www.ebay.com)라는 무료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제작, 운영한다.


 


이베이의 사업 아이디어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서로 알아서 물건을 팔 수 있게 하는 “온라인 장터”를 제공하는 것이었음. 기존 시장은 판매자보다 소비자가 많아 제품 수도 제한돼 있고 제품의 가격도 주로 판매자에게 유리하게 조정되지만, 이베이에서는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소비자가 한꺼번에 참여하기 때문에 제품의 종류나 가격이 훨씬 다양함.


 


이베이의 이런 서비스는 입 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유명해지기 시작, 결국 사용자가 너무 많아 서버를 증축해야 할 상황까지 온다. 오미디아는 서버를 증축하는 대신 늘어난 사용자를 줄이기 위해 유료화를 시작한다. 사용자는 줄긴커녕, 오히려 계속 늘기만 해 결국 오미디아는 자신의 집에 사무실을 차리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이베이를 건설한다.


 


이베이에선 매년 90억 달러 이상, 1억 가지가 넘는 아이템들이 거래되고 있지만, 회사 내에는 물품 인벤토리도, 창고도, 영업 부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거래가 성사되고 난 뒤엔 송금과 물건 배송까지 각자 고객들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e베이는 이렇게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고 있을 뿐. e베이는 거래가 이뤄진 물품에 대해 1-5%의 중개 수수료(커미션)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 웹 사이트에 회원 수만 늘리면 이들이 알아서 아이템 거래량을 높여 줄 것이고, 거래량이 높아지면 자동으로 수익도 증가하니 단순하지만 확실한 수익 구조.


 


판매하는 제품을 스스로 홍보하고, 결제하고, 운송할 필요가 없는 e베이는 그만큼 회사의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소매상인 월 마트(Wal-Mart)의 경우 아이템의 종류, 수량, 가격, 마케팅, 운송 등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에 막대한 운영비용을 감당해야 했으며, 장기 부채가 16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반면 e베이에는 아무런 부채가 없으며 1998년부터 매 분기 흑자를 기록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http://kr.ring.yahoo.com/WEBZINE/main.html















자기애 : 70 점 자극추구성 : 56 점


 




당신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른 어느 누구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 자신 때문이다. 당신이 세운 기준은 너무나도 심오하거나 지나치게 원대해서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당신이 손수 이끌어 갈 수 밖에 없다. 당신에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당신에게 제일 끔찍한 일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다. 당신은 변화 없이 지루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렇게 행동한다.


 




당신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비전과 과감성 때문이다. 당신은 인습이나 사회적인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당신의 실천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남들이 주저할 때 당신은 행동을 한다. 그 기민함과 과단성은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하고, 과감한 자가 성공을 거머쥔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신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독선과 무모함 때문이다. 당신은 독선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물론 그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원대한 비전과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이런 비난은 종종 당신을 지치게 만들고 당신 주변의 여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당신은 위험한 일을 즐기는데 그런 위험한 일은 종종 당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엄청난 실패, 심각한 사고, 크나큰 위기가 찾아온다. 물론 당신은 그것을 즐기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위험이 당신을 집어삼킬 수 있다.


 




반 발짝만 늦춰라. 당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그 반 발짝 차이 때문이다. 당신의 주변 환경 보다 너무 앞서 나가면 세상은 당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신 동료들보다 너무 앞서 나가면 동료들은 당신을 독선적이라 비난하며 등을 돌릴 것이다. 비록 그들이 당신에 비해서 한없이 아둔할 지라도, 당신은 동료 없이는 그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없다. 앞서 나가되 당신의 동료들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들이 기여한 바를 인정할 줄 아는 여유를 가져라. 한가지 더,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최소한 그 끝이 보일 때까지는 매달리도록 하라. 당신이 실패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시작은 원대한데 결말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시작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충분하지만 결과가 부실하면 당신은 졸지에 거품으로 인식된다. 사실 당신은 CEO를 하기엔 좀 위험한 사람이다. 그보다는 창의적인 컨설턴트로서 새로운 가능성과 실천방안을 제시하기만 하고 실천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쪽이 더 어울린다.


 




 


 빌 게이츠에 대항하는 또 다른 IT 신화, 래리 앨리슨 (Lawrence Joseph Ellison)



1944년 생. 주식 가치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창업주이자 CEO.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와 함께 IT 업계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인물. 업계에서 빌 게이츠와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이긴 하지만, 실제론 빌 게이츠와 비슷한 사업 운영 방식을 보인 사람이었음. 빌 게이츠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게이츠와 같은 년도에 회사를 설립했으며, IBM을 발판 삼아 급부상했고, 갖가지 부도덕한 사업 전술로 시장 독점력을 유지할 수 있었음. 그러나 빌 게이츠와는 달리 무척 “화려한” 개성과 급진적 성격을 지닌 인물로 주로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방자한 언행, 수천만 달러짜리 자가용 비행기와 요트, 기이한 연애 행각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곤 함.


 


 


 IT 시장의 예언자, 손정의



1957년 생. 일본 최대의 컴퓨터/인터넷 기업인 소프트뱅크 CEO. 80년대의 PC 붐, 90년대의 인터넷 붐을 이용해 순식간에 거부가 된 사업가. 오랜 생각과 계산 끝에 전광석화와 같은 결단을 내리는 사업 스타일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음. 워낙 다양한 사업체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경쟁력 없는 투기 기업”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손정의는 IT 분야의 네트웍, 콘텐트(미디어), 유통, 포털 등의 인프라 사업체를 이용해 시장 내에 독점력을 행사한다는 일관된 목표를 갖고 있음. 시장 환경 적응과 독점이라는 전략을 내세우곤 있지만 다분히 자신의 독단에 의해 사업을 운영하는 자기과시 형 사업가이기도 함.


 


 


 


 사상 최악의 CEO, 윌리엄 쇼클리 (William Bradford Shockley)



1910-1989. 트랜지스터 발명가, 노벨상 수상자, 실패한 사업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CEO로 평가 받는 인물로, 직원들에 대한 갖은 횡포와 편집증적인 경영 스타일, 그리고 비상식적인 사업 감각으로 기업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했으며, 우수한 직원들이 자립해 다른 경쟁사를 차리게 만들었음. 그는 사업에 실패한 후 우생학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정자 은행의 설립자로 활동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됨. 쇼클리는 기업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IQ가 아니라 현명함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상징과 같은 존재로 남음.

[기사]경제특구ㆍ제주 영어 공용어

2005. 10. 20. 19:00 | Posted by 속눈썹맨
http://news.media.daum.net/edition/affairs/200510/20/yonhap/v10530084.html
강남처럼 제주도도 교육 광풍이 불어서 땅값이 오를 것 같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 영어 실력이 엄청나게 늘 테니까.
다들 제주도로 유학을 보내지 않을 까?

http://news.media.daum.net/edition/workshop/200510/10/donga/v10405400.html


음.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은 60세 정년인데, 50세로 잡다니.
역시 실제 정년보다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이 많은 가보다.


그리고 사실 보험회사, 투자회사 사람들이 겁주는 것만큼
노년에 놀면서 먹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도 생각보다 할 일이 많이 있다.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병들면 어쩔 수 없지만 비정규직 근무들을 많이 한다.
식당 - 이건 솔직히 매우 힘들다.
패스트푸드점 - 나이든 직원들이 점점 늘고 있다.
빌딩 청소부 - 고급 빌딩들은 대부분 청소일이 그리 힘들지 않다.
              좋은 장비들이 많은 편이니까. (coex 같은 곳)
              이것도 백이 있어야 들어간다.
아파트, 빌딩 경비원, 수위
잡부 - 젊었을 때부터 노가다 했던 사람들이 사실 요령이 더 있다.
농사 - 이것도 젊어서부터 밭일, 논일 햇던 사람들.
       우리 할머니는 70대 이신데, 아직도 시골에서 밭농사 지으시며
       혼자 사신다. 고향이 너무 좋으셔서 광주로 오시지 않는 듯.
꽃배달 - 요즘 잘 나가는 노인 알바
전단지 배포 - 이것도 할머니들이 학원가에서 아침마다 한다.
상담가 - 상당히 고급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지식과 정보가 많은 노인이라면 괜찮은 직업이다.
         (나이들어서도 공부 많이 해야 한다.)
         사실 그리 활성화 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회가 dynamic해질 수록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많이지니까.


젊었을 때 몸을 어떻게 관리했는 지, 질병의 유무에 따라 50대 이후의 삶은 정말로 달라질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70대까지도 일을 할 수 있고
아닌 사람은 50대만 넘어도 아프고 돈도 못 벌고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건강이 정말 재산이다.(금전적으로도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그리고 고령화 사회가 되도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인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데, 결국은 정년을 연장하거나 재취업을 시킬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젊은 사람들이 진보적이고 나이든 사람이 보수적이었던 것은
나이들면 안정적으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인데,
나이들어도 충분한 돈이 없다면 진보적이 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따라서 고령화가 되도 사회의 dynamicity도 잘 유지할 수 있지 않을 까?


사실 나이가 들면 육체적인 것은 많이 떨어지지만
정신적인 활동은 그리 감소하지 않는 다는 주장도 많다.
과거의 마인드를 버리지 못해서 그럴 뿐.
과감히 과거를 잊고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면 제 2의 인생을 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