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용주가 되서 연봉협상을 한다고 치자.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는 고용주니까 연봉을 깍아내리고, 상대편은 열심히 올려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립적이고 zero-sum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조건들을 제시해서 근로자의 의욕을 높힐 수도 있고, +/-의 1차원적 줄다리기가 아닌 것을 시도할 수 있어야한다.
업무시간을 늘리거나 줄일수도 있고, 좌석배치를 바꿔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연봉이 아닌 복지와 비금전적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성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가수의 음반을 사주고, 영화를 돈 내고 봐줘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삼는 것은 그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투자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작품에 가치를 지불한다고 생각하지만 미래의 작품에 투자를 한 셈이다.
연봉협상도 투자다. 같은 사람도 1만원주면 1만원짜리 직원밖에 못되지만 1억을 주면 1억짜리 인재가 될 수도 있다. 투자 가치가 높은 상품은 그에 맞는 수량을 구매해야 한다. 돈을 어느정도 적당히 줘야, 나를 위해 일할 때 필요한 도구들(좋은 옷, 차, 많은 연장들, 자기개발을 위한 책)도 사지 않겠나.
기업이 휴가를 주는 이유도 단순히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 고소, 고발을 피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휴가 이후에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지금 당장 휴가지로 쫓아야 한다.
연봉협상에는 많은 방식이 존재하게 된다. 과거의 성과를 보상할 것인가, 미래의 잠재력을 볼 것인가. 과거의 성과만 보상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인재를 발굴 할 수 없다. 과거의 성과를 보상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근로자들의 사기와 충성심도 떨어진다. 미래의 잠재력은 항상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공무원은 왜 의욕이 떨어지는 가? 의욕에 따른 보상이 없다.
과학자는 왜 금전적 성과가 없어도 월급을 받는가? 과학자는 과거의 성과로 먹고 사는 세일즈맨이 아니다. 미래의 잠재력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