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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기산 여행 II

2003. 5. 6. 21:44 | Posted by 속눈썹맨
태기산 고도 1,200미터, 강원도 횡성 최고봉.

오뉴월인데 설마 추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은 항상 추우니까. 겨울옷을 많이 챙겼다. 두꺼운 조끼, 스웨터, 목도리, 장갑.. 솔직히 출발전에는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챙겼다.
바지는 얇게 입었다. 설마 추우랴하는 생각에..
사실 무진장 추웠다. 다 입었는 데도 밖에서 2시간 이상 견디지 못했으니까.

범돌이형은 운전 경력 3년.. 별바 사람들 중에 제일 잘하는 데. 성훈이도 잘했다. Optima 빌려서 지겨운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리고 했다. 후배들은 내 어깨에 기대에 잠이들고 목이 잠기도록 수다를 떨기도 했다.
지루한 Road Movie 하나 찍은 것 같다. 먹고 달리고 먹고 달리고 졸고 달리고.. 휴게소에서 쉬고 커피먹고..

드디어 해질무렵에 맞춰 태기산 아래에 도착했다. 시골 읍내에서 저녁을 먹었다. 초저녁인데도 졸리기 시작했다. 이런.. 구름도 약간 끼었다. 안돼~~~~

구불구불 강원도 산길을 올라 태기산에 도착했다. 비포장도로를 통해서 벌금 20만원짜리 입산통제 구역으로 올라갔다. 주변에 군부대도 있고 인적도 드물어서 불빛도 없는 관측의 최적지이다. (우리나라 천문인의 5대 성지 중 하나란다.)
처음에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1시간만에 구름이 하늘을 먹어버렸다. 30분 간격으로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했다. 망한거다..
별바 여행의 특징은 역시 춥고 배고픔. 노숙자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새벽 2시.. 사람들이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결국 다들 헤롱헤롱 상황에서 태기산을 포기하기로 했다.

  "가자 강릉으로~ 정동진 보자."
세수도 안한 사나이들이 외쳤다. 다들 잠결에 외쳤다. 아무튼 출발. 운전기사가 자면 모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옆에서 운전기사를 졸지 않게 해줄 사람이 보조석에 앉아야했다. 그래서 내가 보조석에 앉았다. 하지만 난 그 이후 5시간 동안 졸았다. (책임감 부족 + 수면, 체력 부족) 미안해. 운전기사 범돌이형~

눈을 떴다. 정동진.. 사람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츄리닝 입은 커플들이 넘쳐나고 포장마차마다 빈 자리가 없었다.
돈도 없고 복잡하고 해서 정동진을 빠져나와 등명 해수욕장으로 갔다. 동해안이라서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철조망으로 막혀있었다. 저 멀리 백사장을 거니는 사람이 아주 작게 보였다.
그들도 노는 데, 우리라도 못 놀건 없었다. 조금 더 바다에 가까이 가보려고 철조망을 넘었다.

"앗. 사람 아니다. 군인이다.."
군인도 사람인데.. 아무튼 간첩으로 오인 받아서 총 맞아죽을 뻔했다. 얼른 다시 넘어왔다.

  해안을 따라 도로도 멋지고 철도도 놓아져 있었다. 철도 위에 누워 폐인 사진을 찍었다. 멀리서 기차소리가 나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수면 부족 때문이리라. 진짜 기차가 지나갔으면 쥐포 됐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차를 타고 무진장 자고 깨고 하면서 돌아왔다. 겨우 목숨만 건져서 12시에 KAIST에 도착.
별바 MT는 항상 추위, 배고픔과의 싸움이다.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