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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정부-기업 공조, 이공계를 탄핵하다
‘이공계 위기’ 담론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정부도, 기업도, 이공계 대학의 학장도 모두 나서 ‘이공계 위기’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언제나 문제가 일어났을 땐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도, 기업도,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과학기술자들도 모두가 ‘위기’의 피해자인 양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위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재난이라도 된단 말일까?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이공계 위기’ 현상 뒤에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공계 죽이기’를 공조해 온 정부와 기업이 있었다. 이공계 연구원들의 가장 큰 사용자인 이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공계 위기’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2004년 04월 09일

김윤지 기자 (yzkim@economy21.co.kr)














1. ‘이공계 위기’는 음모다?
2. '과학입국' 거짓말, 손해배상받고 싶다
3. 이공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90년대 중반 이후 시장주의 논리 무분별 수용…단기 성과 압박, 넘쳐나는 비정규직 등 위기 부추겨

우리나라 역사에서 웬만해선 60년대를 회고하며 좋게 추억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적어도 이공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60~70년대를 최고의 전성기로 꼽는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66년 국책 종합연구기관으로 처음 세워지면서, 연구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기 때문이다. 경제개발이 최우선 과제이던 그때 정부는 경제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만들었고, 그에 따라 연구원들은 대학 교수보다 2~3배 높은 보수를 받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에 이르면서 이들의 위치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부터 ‘정부출연 연구소의 기능재정립과 운영의 효율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YS정권은 연구기관을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민간 기업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연구기관은 순수한 공익적 기관으로 여겨졌던 터라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이었다. 결국 YS정권의 ‘세계화’ 논리에 따라 많은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은 대기업에 넘겨지면서 민영화되기 시작했다. 남은 연구소들도 통폐합을 거치면서 스스로 공공기능을 저버려야만 했다. “이때부터 돈 되는 연구, 산업체에서 필요한 연구만 하라는 주문이 시작됐다”는 게 이성우 전국과학기술노조위원장의 설명이다.


PBS 도입으로 연구원들 ‘앵벌이’로 전락

무엇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 황폐화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히는 것은 95년 도입된 PBS( Project Base System,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였다. PBS가 도입되기 전에는 연구원들의 인건비는 정부 예산으로 책정되고, 연구 직접비만 프로젝트별로 지급됐다. 그런데 PBS가 도입되면서 연구원들은 연구과제를 따야만 인건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연구과제비 안에 인건비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른 결과는 뻔했다. 연구원들은 자신의 월급을 벌기 위해 공익성을 가진 기초연구보다는 단기 생산성 위주의 연구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공계 연구를 극단의 경쟁논리 속에 던져 연구원들을 ‘앵벌이’로 전락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PBS의 여파는 매우 심각하다. 연구과제비 수준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 웬만한 과제를 따도 예산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억원짜리 과제를 따와도 과제책임자 인건비와 다른 비용을 포함해 약 6천만원을 제하고 나면 남는 비용이 4천만원 안팎”이라며 “이 비용으로는 도저히 연구원급 인력을 쓸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계약직 석·박사 과정 학생을 1년에 1천만~1500만원 수준에서 몇 명 써야 겨우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고 KIST의 한 연구원은 현재 과제책임자 아래에 정규직 연구원급 인력이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특히 PBS는 연구현장의 심각한 비정규직 심화현상을 낳았다. 2002년 기준으로 현재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비중은 약 50% 정도다. 연구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비정규직인 매우 열악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9월 순수 토종기술로 처음 만든 우주관측 과학위성 ‘과학기술위성1호’를 쏘아올렸을 때 더 잘 알려졌다. 이 연구를 진행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개발팀 26명 가운데 23명이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 15년 동안의 숙원사업은 비정규직들에 의해 이뤄진 셈이었다.

게다가 이들의 처우는 도시 근로자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1월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지부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정부출연 비정규직 연구원 395명에게 실시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부출연기관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월 평균 임금은 약 128만원이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40.8%는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고 답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그래프 참조).

98년 이후에는 다른 산업체들이 모두 그랬듯 정부출연 연구기관들도 IMF 여파에 따른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이미 도입된 PBS로 인건비를 제 손으로 벌어야 하는데다, 연봉제가 도입되고 기본급과 성과급의 비율이 7대 3으로 정해지면서 연구원들 사이에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거짓 성과를 내기 위한 관행들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연초 계약한 횟수를 채우기 위해 필요 없는 논문 발표하기, 의미 없는 특허·프로그램 출원하기 등과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해진 것이다.

게다가 심각한 문제는 2000년대 이후 이런 분위기가 더욱 가속화되자 연구비가 불공정하게 배분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성우 과학기술노조위원장은 “올해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비는 6조원 정도로 지난해 5조3천억원보다 크게 늘었지만 연구현장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현재의 예산도 투명하게 집행하고 배분하면 연구원들의 고용 문제는 물론 연구 분위기도 훨씬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민간기업연구소, 연구원을 ‘소모품’처럼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PBS로 이공계를 흔들었다면, 민간기업 연구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공계 죽이기를 해왔다. 현재 ‘이공계 위기’에 대해 말할 때 각각의 처한 상황에 따라 위기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다. 기초과학을 다루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은 주로 고용불안, 열악한 처우라는 위기에 직면했지만, 일단 정규직만 되면 61살까지 ‘정년’을 보장받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산업체에 연결된 민간기업 연구소 연구원들은 정부출연 연구기관보다 다소 처우는 좋지만, 안정성에선 이들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민간기업 연구소 연구원들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제까지 해온 연구 풍토 때문이다. 워낙 원천기술에서 취약한 상황에서 빠른 성장에 골몰하다 보니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원천기술을 해외에서 사온 뒤 양산기술이나 응용기술을 덧붙여 부가가치를 얹는 형태의 연구를 해오곤 했다. 일종의 기술 베끼기를 해온 셈이다. 이런 식의 개발을 하기 위해선 경험과 관록이 있는 최고 수준의 연구원은 필요 없다. “일단 들여온 기술을 6개월이나 1년 안에 빨리 습득해 적용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젊고 빠릿빠릿한 신입연구원들이 훨씬 유리하다”면서 “오히려 나이 많은 연구원들은 체력도 떨어지고, 적응력도 떨어지기에, 기업들이 연구원들을 소모품처럼 한번 쓰고 버리는 식으로 다뤄온 것”이라며, 대기업 계열 연구소 출신의 한 연구원은 기업의 연구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게다가 지난 IMF 때 드러났듯, 기업 구조조정을 할 때 가장 만만한 대상이 연구원이었다. 당장 기업 생존에 필요 없다고 판단한 데다, 기술 축적이 의미 없는 연구 풍토라 경험 있는 연구원들이 아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소 연구원들은 대부분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아 손쉽게 인력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때문에 현재 쓸 만한 인재가 없다며 ‘이공계 위기’를 외치는 기업의 모습에 많은 연구원들은 분노를 터뜨리곤 한다. “이제까지 임금이 싼 젊은 연구자들로부터 빨리빨리 뽑아 먹을 태도를 가지고 있다가, 그런 식의 연구가 한계에 이르자 인재탓만 한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대학이 직업훈련원이 아닌 이상 기업 입맛에 딱 맞는 인재는 기업 스스로 키워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모습은 그와 반대였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연구를 하는 탓에 민간기업 연구소에도 최근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 1∼2년 동안의 프로젝트에서 성과가 바로바로 나오지 않으면 인력을 금세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인력저수조 강화책’은 이런 연구원들의 비정규직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여,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인력저수조란 정부가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들의 풀을 조성해 놓고,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들을 싼값에 쓸 수 있도록 제공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중소기업급 연구소에서 박사급은 연봉 2800만원에, 석사급은 2200만원 정도를 주고 쓸 수 있다. 그럴 경우 인건비의 30% 정도를 정부가 찬조금 형식으로 지원해 주기도 한다. 대학이나 정부출연 연구소에서는 박사급은 월150만원(연봉 1800만원), 석사급은 월 120만원(연봉 1440만원)만 주면 인력을 쓸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이런 인력을 1500명까지 늘린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일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제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민간기업에선 박사급 인력에겐 연봉 2800만원 이상을 주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근거가 마련된다. 박사급 연구원들의 임금 상한선이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는 합법적으로 연봉 1800만원짜리 박사급 연구원을 비정규직으로 쓸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비정규직 양산에 또 한번 공조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 심화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과학기술인들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목소리도 있다. 과학기술인들이 기능인으로만 전락해 버려, 과학기술의 공공적 기능를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어온 탓도 있지만, 과학기술 정책이 경제논리에만 휘둘리도록 그냥 둔 것 역시 과학기술인들의 책임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간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이런 변화가 몰아닥친 것은 기껏해야 10년. 지금 위기의 책임을 과학기술인들에게만 지우려는 것은 과거 양파파동, 고추파동으로 시름에 빠졌던 농민들에게 한국 농업이 이 모양이 되도록 왜 가만히 있었냐고 따지려 드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때 그 농민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농협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고추를 지으라면 고추를 지었고 양파를 지으라면 양파를 지었다. 농협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이라면 그 농사를 지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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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렇게 계속 회사다니다가 Manager되면 훨씬 돈도 많이 벌고 안정되게 살 것 같다.


국내 대학원 가서 석,박사 되봤자. 졸업하면 다시 회사가야 되니까 똑같다.


하고 싶은 연구도 어차피 못하고 하고 싶은 공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안정되고 그나마 재미있는 일 하는 회사 다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든다.


요즘은 외적 요인을 제외하면 회사 : 대학원 진학 = 0.5 : 0.5 인데.


외적요인(사회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그냥 회사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


슬렁슬렁 영어 공부도 안하니 유학도 글렀고..


회사 다니다가 30살 넘어서 늦깍이 유학생이 될까?


(일단 나가면 KAIST 교수될 실력있고 자리 남을 때가 아니면 절대 안 돌아오는 걸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