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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빌고…굶고…머리깎고… '이상한 선거'
유권자들 감성 자극하는 '깜짝 이벤트'
각당 지도부 나서고, 후보자 따라하고

이번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시종일관 ‘빌고, 울고, 굶고, 머리 깎고, 농성하는’ 자학(自虐)성 선거운동 방식이 붐을 이룬 것이다.

유권자 이목을 끌기 위해 독특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어느 선거에서나 마찬가지였지만,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각 당 지도부, 후보들이 “잘못했다. 용서해달라”며 삭발 단식 삼보일배 등에 나선 것은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항거 수단이거나 종교나 수행(修行) 목적의 행위들을 사생결단식 승부수나, 유권자 감성을 자극하는 득표 전략으로 활용한 것이다.


자학적인 선거운동은 3당 지도부가 앞장섰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08배 등 종교별 사과의례로 당선 후 첫 활동을 시작한 후, TV 선거 유세방송에서는 눈물을 보였고,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선거전에 돌입하자마자 지원 유세를 하는 대신 광주에서 3일 동안 삼보일배를 했으며,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도 12일 밤 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곧바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부겸 김영춘 송영길 안영근 이종걸 임종석 의원 등 열린우리당 소장파 6명은 12일부터 ‘민주주의 사수’를 주장하며 낮에는 유세하고 밤에는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이고, 한나라당 송광호 후보는 국회에서 탄핵안 표결 과정에서의 ‘폭행’ 등을 반성한다며 지난 1일 삭발했다.












▲ 누굴 찍노?... 4.15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부산 용두산공원에 산책 나온 노인들이 후보자들의 유인물을 펼쳐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용우기자
13일 오전 부산 충무새벽시장 맞은편 대로에는 ‘단식 4일째’라고 적힌 파란색 천막 안에 수염이 텁수룩한 민주당 정오규 후보가 엎드려 있었다. 그는 지난 10일부터 거리 유세를 중단하고, ‘지역주의 청산’을 내걸고 단식 중이다. 비슷한 시각, 부산 수영교차로에선 무소속 김정희 후보가 죄수복을 입고 유세차에서 삭발식을 갖고 단식에 들어갔다.

부산에서는 12일 열린우리당 조성래, 윤원호 비례대표 후보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한나라당 부산 싹쓸이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삭발했고, 같은 시각 해운대·기장을 최택용 후보는 단식에 들어갔다. 또 영도구의 자민련 한영중 후보도 자신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삭발했다.

대구에서는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김태일(수성갑), 윤덕홍(수성을) 후보를 시작으로 12일까지 대구 출마 후보자 10명 전원이 단식에 돌입했다. 중·남구에 출마한 이재용 후보 부인 강보향씨, 이강철(동갑) 후보의 부인 황일숙씨 등, 후보자 부인 6명은 지난 9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넘게 대구 도심 1㎞ 구간에서 “대구·경북에서 한나라당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며 삼보일배를 했다.

이강철 후보는 13일 대구 팔공산에서 1시간이 넘게 맨발로 산행하는 ‘고행’을 하며 “나는 아니더라도 능력있고 참신한 다른 열린우리당 후보들을 뽑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광주의 민주당 김영진 김대웅 장홍호 후보 등은 지난달 말 “광주시민들에게 석고대죄 드린다”며 단식 농성을 벌였고, 같은 당 김선문(경기 군포) 후보는 선거운동을 반납하고 군포에서 광주 5·18묘지까지 ‘참회의 도보순례’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선거양태에 대해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민주정치가 이미지 정치 성격도 있긴 하지만, 정치인들이 실체없이 이벤트로 승부하는 것은 정치를 얇게 하는 것”이라며 “더구나 이같은 행태는 자극하면 반응하는 대상으로 유권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녹색사민당은 13일 “저열한 쇼로 유권자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과연 국회의원 자격이 있느냐”며 “얼마나 정책과 도덕성이 빈약하면 저럴까 안쓰럽기 짝이 없다”는 논평을 냈다.


(대구=구성재기자 sjko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