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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영의건축스케치]‘건축무한육면각체’를 아십니까?


<날개>로 유명한 천재 시인 이상이 실은 경성고보(현 서울대학교의 전신) 건축과를 졸업한 건축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졸업 후 그는 조선총독부 건축과에 기수(요즘 말로하면 건축기사)로 취직을 하였는데 활동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그의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다만 기수 시절의 몇몇 에피소드만이 떠돌 뿐이다. 그의 건축가적 면모를 볼 수 있는 시중에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것이 있다.


이상의 시는 난해하기로 소문이 나서 <건축무한육면각체> 또한 문학계에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으나, ‘Au Magasin de Nouveautes (현대적인 백화점)' 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화점 건물을 보고서 건축가로서 느낀 감상을 적어놓은 시라고 생각하면 훨씬 해석이 쉽다. 이상은 일본을 여행하던 중 도쿄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인다.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본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는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계단이다. 번화가에 위치한 백화점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드나 드는데, 그 화려한 무더기가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아래위층으로 움직이는 모습, 산더미처럼 쌓인 값비싼 상품들, 나아가 거대한 자본의 물결과 물류의 유통을 보고 느낀 감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밑에 깔고 시를 읽어보면 화려한 일본의 백화점과 대비되는 초라한 식민지 건축가의 모습이 보다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의백호.회충양약이라고씌여져있다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무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XII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도아-의내부의도아-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야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구를질구하는조화분연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

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련한후에애련하는나)

사각이난케-스가걷기시작한다(소름끼치는일이다)

라지에-타의근방에서승천하는굳빠이

바깥은우중.발광어류의군집이동


봄에 마르세유 항구에서 출발한 프랑스제 코티향수가 마침내 가을이 되어서야 동양의 백화점에 도착해 상품으로 진열되었다. 옥상정원에는 한껏 치장한 아가씨가 마치 마드모아젤이나 되는 양 뽐내고 앉았는데, 마침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백화점의 내부가 휘황하게 빛나는 가운데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마치 군집 이동을 하는 발광어류처럼 보인다. 절묘한 비유이다.


이 참에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이름으로 불러 보는 것이 어떨까. 건축가 이상은 건축 작품은 남기지는 못했지만 건축용어 하나를 남겼노라고.


하니리포터 서윤영 기자 = 명지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의 저자 reekazz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