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첨단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이 이공계 연구개발 종사자들의 거센 반발을 낳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연구개발인력의 일정기간 전직금지와 동종업계 취업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연구개발인력 관리대책. 이공계 종사자들은 이 같은 정부대책이 “현대판 노비문서와 다를 바 없다”며 관련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8일 이헌재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서 ▲국가핵심기술, 기술보유기업 해외매각 시 정부 승인 의무화 ▲핵심기술 연구개발인력 일정기간(3년) 전직금지 및 퇴직 후 동종업체 취업금지 ▲기술 유출 신고자에 최고 1억원까지 포상금 지급 등 기술유출 방지대책을 논의했다. 그리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첨단산업기술 유출방지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안을 빠르면 내년 7월까지 입법 추진키로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이공계 종사들은 “입법 과정에서 전직제한 조항 등이 삭제돼야 한다”며 서명운동에 나섰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위한 핵심기술에 대해 특별관리 조치가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직제한 조치는)고급 기술인력을 3년이나 현장에서 격리시키는 조치에 지나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전쟁 시대에 3년이란 기간은 고급인재가 사장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간”이라고 정부대책을 성토했다. 또 전직제한 조항이 국내 업체 간 전직도 포괄하고 있어 핵심기술의 국외유출을 방지하기 보다는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국내용’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홈페이지(http://www.scieng.net)를 통해 지난 2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서명운동에 23일 오전까지 2000여명의 연구개발직 종사자들이 동참해 이번 사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서명에 참가한 유충근씨는 “휴대폰 개발하다 자동차 개발하러 가란 말이냐”며 “국가보안법 보다 더 한 인권침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우씨는 “의욕 없는 노예로부터 제대로 된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반문했고, 서명운동에 동참한 많은 이들은 “기술유출 방지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연구개발인력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선 안될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주무부처인 산자부는 사원과의 합의를 통한 전직 금지 약정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와 해외사례 등을 볼 때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최경환 운영위원은 “해외의 경우 전직을 제한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도록 합리적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회사가 연구원에게 전 회사의 업무기밀누설을 요구할 경우 소송을 통해 직업윤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연구개발인력의 일방적 희생만 강요하는 우리와는 큰 차이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한국과학기술연합은 정기국회 전까지 100만명이 참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해 입법 과정에서 불합리한 전직제한 관련 조항이 삭제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혀 이 문제를 둘러싼 파장이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