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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마이너스 통장의 마법

2004. 5. 21. 16:23 | Posted by 속눈썹맨





마이너스 통장의 마법















글쓴이 :  심영철 등록일 :  2004-05-21 조회수 : 9203 





모 대학 경영학과의 모 교수님이 어느 날 제자인 가군에게 현금 카드를 주면서 돈 좀 찾아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잠시 후 가군은 가까운 현금지급기에 가서 돈을 찾아 왔습니다. 돈과 카드를 교수님한테 드리면서 사뭇 궁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던지는 말 '교수님 현금지급기가 고장이 났나 봐요. 돈을 찾았는데 금액이 줄지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거 있죠. 또 금액앞에 '-'가 있더라고요. 고장난 거 맞죠?'

이건 작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순진한 ‘돈맹’ 제자가 ‘마이너스통장의 정체’를 몰라서 생긴 에피소드죠. 이랬던 가군이 은행에 취직했습니다. 가군이 은행물을 조금씩 먹어가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마이너스통장의 마법과 같은 놀라운 징크스였습니다.

가령 통장에 1~2천만원의 여유자금이 있는 고객에게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플러스(+)인 잔고가 슬슬 줄다가 결국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급기야 마이너스 한도를 금방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플러스가 되는 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죠? 많은 샐러리맨들이 겪는 일이라고 봅니다.





대개 배우자 몰래 주식투자를 하거나 술값 등 과다한 지출을 막기 위해서 만드는 마이너스 통장, 분명 이것은 예금의 '탈'(?)을 쓴 대출입니다. 그리고 대출금리도 그리 낮지 않습니다. 물론 연 30%에 육박하는 현금서비스 수수료율에 비한다면 낮죠. 통상 연 10% 안팎의 신용대출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데요, 가령 1천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을 만든다면 연 10% 이자율, 즉 100만원 정도의 이자를 지불하게 되는 것이죠. 매월 8만원씩 낸다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대출의 성격상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뼈를 깍는 노력이 없고서는 절대 대출금액이 줄지 않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절약을 하거나 무리한 투자를 삼가야 겠죠.

또 돌발적인 지출이 생겼다면 먼저 기존의 예금이나 적금을 해약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보세요. 예적금과 대출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또 그걸로도 모자라면 다른 담보대출을 알아 보세요. 가령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면 연 6% 내외의 비교적 싼 대출을 쓸 수 있죠.

이처럼 대출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고생하기 마련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심기일전하여 제대로 된 재테크를 해 봅시다.





"발명가 노무현, 작년 가을 감따는 장치 개발"
윤태영 대변인 발명의 날 앞두고 대통령 일화 소개


[조선일보]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발명의 날(19일)을 앞둔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발상은 끝이 없어 청와대 경내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감을 편하게 딸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면서 “밑에서도 편하게 가위질만 하면 높은 곳의 감을 잘라낼 수 있는 장치를 생각했고, 그것은 대통령의 지시로 실제로 만들어졌으며, 지난 가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그 장비를 들고 관저 주변 감나무의 감을 열심히 땄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인터넷 사이트에 ‘발명의 날과 노무현: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선닷컴 internetnews@chosun.com )














윤태영 대변인의 '발명의 날과 노무현: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전문








대통령은 발명가이다.




물론 직업발명가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또 어떤 상황에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이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그것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보거나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영락없는 발명가의 모습이다.




우선 인명관리 프로그램('노하우 2000')을 개발하는 데 들인 열정과 정력이 그렇다. 웬만한 젊은 세대보다 컴퓨터를 일찍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했다. 주어진 것을 대충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뭔가 바꿀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발명가가 되는 게 꿈이라서? 결코 아니다. 그것은 천성이자 본능이다. 그 열정은 젊은 참모들조차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두 손을 드는 상황이다.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 대통령은 회의를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의자 등받이 위쪽의 모양을 옷걸이 모양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무래도 그냥 의자에 웃옷을 걸어놓으면 모양이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일리 있는 발상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청와대 안에서도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발상은 끝이 없었다. 경내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면서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저 감을 편하게 딸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밑에서도 편하게 가위질만 하면 높은 곳의 감을 잘라낼 수 있는 장치를 생각했고, 그것은 대통령의 지시로 실제로 만들어졌다. 지난 가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그 장비를 들고 관저 주변 감나무의 감을 열심히 땄다. 아무튼 우리 대통령은 그런 대통령이다. 그 대통령이 정말로 특허청에 실용신안 특허로 등록해 놓은 것이 있다. 바로 독서대이다.




오래 전, 30여 년 전쯤의 일이다.




김해 장유의 불모산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노무현, A씨, B씨, 세 명의 고시준비생이 있었다. 뒤늦게 이 팀에 합류했던 A씨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수험생 노무현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독서대. 말하자면 대통령의 발명품이다. 그 독서대를 이용하면 책을 여러 형태의 각도로 놓을 수 있어서 책을 보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있어도 항상 편하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비스듬히 누운 것 같은 편안한 자세로도 볼 수 있는 그런 독서대였다. 게다가 두터운 수험서와 법전을 동시에 올려놓고 볼 수도 있었다.




A씨는 대통령의 그 발명품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엄연히 밤을 낮 삼아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 언감생심 독서대를 만들어 달라 하기도 미안하던 차에 어느 날 우연히 제안을 했더니, 대통령은 제안을 흔쾌히 OK. 한나절 이상 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한 끝에 새로운 또 하나의 독서대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 효용을 만끽한 3인에게 독서대는 고시에 못지않은 새로운 희망이 되었던 듯. 3인은 논의를 한 결과 이 독서대를 특허로 등록하기로 합의했고, 대통령은 실제로 이를 특허 등록했다.




그 후 대통령은 결혼을 했고, 그 결과로 3인의 고시준비생 가운데 대통령과 A씨는 시험준비 장소를 대통령의 집이 멀리 마주보이는 산자락에 지은 마옥당(磨玉堂)으로 이전했다. 이후 A씨는 서울의 고시촌으로 다시 이동을 했고, 얼마 후 대통령은 고시에 합격을 했다.




어느 날 사법연수원을 다니던 대통령이 A씨가 있던 고시촌에 들러 하나의 제안을 던졌다.




"사법연수원을 다녀보니, 고시에 합격하는 게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럴 바엔 아예 지금부터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떨까?"




특허를 받아놓은 독서대를 가지고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보자는 것. 결국 철두철미한 성격의 A씨가 사업계획서를 작성했고, 그 계획서를 들고 3인은 부산의 한 선생님을 찾아가 그 사업의 후견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선생님은 뜻하지 않게도(?) 75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500만원을 내놓으면서 이들 일행의 사업에 투자를 했다.




3인은 즉시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나 보다. 무엇보다 생산공장을 원활하게 돌리기가 어려웠다. 목재조립품이었던 독서대는 당시 목재가공기술이 여의치 않아 상당한 불량품이 쏟아지는 등 생산과정에서부터 애로가 많았다. 또 광고를 할 자본이 없으니 판로 개척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악전고투 그 자체였다. A씨는 고시촌 일대를 돌며 영업을 했고 또 적지 않은 물량을 팔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오래 버티기에는 역부족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1년. 500만원은 30만원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막다른 길에 봉착한 3인은 결국 선생님을 찾아가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첫째, 다시 500만원을 투자해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주시거나, 둘째, 그 빚을 갚을 때까지 A씨가 노력봉사를 하거나, 셋째, 기약은 없지만 먼 훗날 갚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쯤에서 일단 정리하자는 것. 말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의 결론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라."




다시 시간이 흘러,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화려한 청문회 스타에서 초라한 낙선자로 전락해 있던 대통령과 A씨가 소주를 함께 했다. 그리고 제법 거나하게 취한 두 사람이 권양숙 여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헤어지려던 즈음, A씨는 권 여사가 건넨 뜻밖의 말에 술이 확 깨었다.




"그때 그 500만원, 이 양반이 변호사 된 후에 제일 먼저 갚았습니다.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준 뜻밖의 이야기에 깜짝 놀란 J씨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이 또 있었다. 권 여사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권 여사를 향한 대통령의 불만 가득한 한마디.




"쓸데없는 소리! 그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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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조지 소로스·DJ정부 끈질긴 악연
엇갈린 평가…세계 금융 주무르는 ‘야누스’

외환위기 원인제공자이기도 한 조지 소로스는 전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투기자본의 황제이자 헤지펀드의 대부이다. 그런 그가 외환위기 혹한에 몸서리치던 98년 위기극복의 동반자라는 호평과 함께 재등장, DJ정부의 융슝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막강한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냉혹하리 만큼 아시아와 남미시장을 짓밟는 그가 유독 한국에서만 철학자로, 자선가로 평가받는 것은 외자유치에 골몰한 나머지 자기 안방을 내준 정부와 재계가 만든 허상일 뿐이다.

‘20세기의 마이다스’·‘세계 금융계의 큰손’· ‘유태금융 마피아 대부’·‘월가의 황제’ 등 수없이 많은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달고 다니는 조지 소로스 퀀덤펀드 회장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서울증권 보유주식을 대거 처분해 총 298억원 이상을 한손에 거머쥐었고, 액면가 2500원 대비 60%에 달하는 서울증권 주식을 주당 1500원에 고액 현금배당하겠다고 발표해 서울증권 주식이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이변이 속출, 또한번 국내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고액 현금배당을 포기하고 소로스가 일부 지분을 처분한 것과 관련해 증권가에서는 ‘전형적인 헤지펀드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행위’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소로스가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대접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많은 외국인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점을 안다면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투기자본의 대부이자 환투기의 대명사인 소로스가 한국 대통령의 친구이자 한국을 외환위기의 깊은 수렁 속에서 건져올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은 그의 최근 행보와 톱니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폭탄보다 무서운 금융폭탄으로 아시아와 중남미를 초토화시킨 장본인인 조지 소로스 회장이 이처럼 한국에서 대접받게 된 이유는 쓰라린 외환위기의 진입 과정과 탈출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그가 어떻게 국내 금융시장과 기업시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조지 소로스 회장과 DJ정부의 인연 그리고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소로스의 이중성에 대한 집중 조명을 통해 그의 실체를 들여다보았다.


소로스 회장의 서울증권 지분 매각과 고액 현금배당 발표는 사실 큰 이목을 끌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와 그간의 행적 그리고 감추어진 음모를 파헤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 그가 고배당을 마다한 채 서울증권 지분매각에 왜 나섰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1월4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조지 소로스 회장과 만찬을 가졌다. 외환위기 폭풍이 휘몰아치던 당시로서 DJ와 소로스의 만남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실제로 이날 국내외 언론은 DJ의 일산 자택에 모두 모여 치열한 취재경쟁을 펼쳤고, 이 두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단 두 사람은 한국의 외환위기 타개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한 걸로 알려졌으며, 이 자리에서 소로스는 “한국 외환위기는 미국 월가의 대 한국 투자마인드를 회복하는게 핵심”이라며 “내가 도울 수 있는 한 돕겠다”고 말해 경제난에 고통받던 우리 국민에게 일견 구세주처럼 비쳐졌다.
물론 DJ는 소로스의 이같은 답변에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 “모든 걸 국제기준에 맞추겠다”고 답했고, 이후 DJ는 해외로부터 투자유치를 위해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아온 각종 규제와 기준들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대통령 당선자와 세계 금융계의 큰손이 한국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협력을 약속하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국민들에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외환위기가 무슨 연유로 닥쳤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이날 DJ와 소로스의 만남은 한편의 연극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소로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4천만 국민 모두가 속은 셈이다.
사실 외환위기는 국내외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 위기다. 누가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외환보유고의 고갈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는 음모론은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소로스가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1992년 말이었다. 물론 소로스라는 인물보다 소로스 그룹의 ‘소로스 펀드’가 먼저 상륙을 했고 약 4000억원에 달하는 투자자금이 한국에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졌다.
그러나 1996년 천정부지로 치솟던 한국경제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외환시스템에 잇따라 경고등이 켜지면서 소로스는 1996년 단돈 300억원만을 남겨놓은 채 모든 투자자금을 회수해 나갔고 1997년 싱가포르 역외선물환 시장에서 원화를 대량 매도해 원화가치 폭락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때를 맞춰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보유하고 있던 한국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고, 한국은 깊고 깊은 외환위기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한국의 외환위기 요인 중 소로스 역시 원인제공자 역할을 담당했고, 그가 한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와 남미에서도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사실 소로스는 융슝한 대접을 받을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태국 방문을 추진하다 신변 위협을 느껴 방문을 취소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소로스는 친구나 동지이기보다 적군에 가까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1998년 다시금 한국에 들어왔을 때 버선발로 나가 그를 반긴 이유는 무엇일까. 부족한 외환고를 채우고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8년 1월4일 DJ와 소로스의 만찬이 끝난 뒤 당시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소로스 회장은 한국이 재금융공사를 만들어 정부가 보증하는 전환사채를 국제시장에서 발행한다면 이를 매입해 한국에 투자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DJ는 앞서 보도한대로 모든 것을 국제기준에 맞추겠다고 화답, 핑크빛 전망을 낳았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선지 소로스는 바로 다음날인 1월5일 한국을 떠나면서 “재금융공사 설립을 제의한 적이 없고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채권을 발행하면 이자 때문에 외환이 부족한 한국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해외자본의 추가 차입보다는 외국투자가들을 주식시장으로 유인해야 한다”면서 “한국기업들은 증자로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말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바로 출국 기자회견에서 소로스는 투기자본과 헤지펀드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실제 소로스는 한국 증시에 대거 돈을 쏟아 부으며 증시열풍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바닥을 모른채 하락했던 주가는 급격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또한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증자를 실시했고 부실자산에 대한 매각에 나서는 등 IMF의 이행조건을 하나둘씩 밟아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들이 증자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DJ는 과거 소로스에게 화답한 대로 국제기준에 맞춰 외국인들의 보유지분 한도를 풀어주었고 급속히 외국인 자본이 국내 기업들의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사실상 외국인들에 의한 국내기업의 지배력은 절대화되었다. 그리고 이 틈을 소로스는 절묘하게 파고들어 서울증권을 인수, 자신의 속내를 감춘 약속이행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뒤편에서 소로스는 야금야금 국내 기업들의 지분 인수와 매도를 통해 엄청난 차익을 챙기기 시작했고, 취약한 국내증시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한국경제를 이끌고 갔다.
사실 소로스는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대한 투자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했지만 엄청난 피해를 보기도 했고, 소로스가 한국에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은 세계 각국에 대한 투자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소로스를 마치 구세주인 양 평가하고 외환위기 극복의 동반자격으로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소로스는 투기자본의 속성대로 절대 손해 보지 않는 투자를 하는 인물이다. 어느 한 곳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다른 한곳을 희생시키거나 또는 회생시켜 이득을 취한다.
이에 따라 소로스의 박애주의적인 기부활동 역시 의혹의 눈길을 받는다. 그리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의 사생활 역시 내면에 감추어진 ‘사악한 구세주’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행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증권 고배당설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분매각을 한 소로스의 처사는 분명 뭔가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 소로스의 서울증권 포기설과 자금회수설이 나돈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로스는 언제라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보따리를 싸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고 떠날지 모르는 인물이다. 그리고 다시 소로스가 한국을 떠난다면 지난 외환위기와는 규모나 강도면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큰 파문이 일 것이 분명하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금융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허용하는 반면 사람의 이동은
엄격히 제한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생산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각국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국제자본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규제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규제가 강하면 자본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말 것이다. 글로벌화의 영향력 하에서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조치들의 특성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또한 국제자본의 유치가
다른 사회적 목표의 달성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글로벌화와
연관되어 사람들이 직면하는 대다수 문제들-시장가치가 전통적으로 그렇지 않았던
영역까지 파고드는 것 등을 포함하여-이 바로 이러한 현상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조지 소로스, <미국 패권주의의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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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씨가 이런 말 해도 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군..;; 투기 자본가라던데.


능력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걸 잘 알겠지.


 


첫번째 문장에서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가능하고 사람의 이동은 제한한다는 내용은


제 3의 물결에서도 읽은 것 같다.(제 3의 물결이었나? 아니면 소유의 종말에서 였나? 헷갈리네.)

[펌]동양인과 서양인이 생각하기

2004. 5. 18. 09:46 | Posted by 속눈썹맨
심리학자들이 인간 사고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학문 분야의 학자들은 서양인들, 즉 주로 유럽인,
미국인, 그리고 영연방 계통 국가 사람들이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 같은 동아시아 사람들과 매우 다른
사고 체계를 수천 년 동안 유지해 왔음을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대해서도 놀라울 정도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서양인들이 물리적 사물, 동물, 사람을 모두 포함한 사물의 행동을 설명할 때
아주 분명한 규칙들에 의거한다고 한결같이 가정하고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범주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범주를 알게 되면 어떤 사물이 속하는 특정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을
사용하여 그 사물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문제 해결과정에 형식 논리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반하여 동양인들은 사물들을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매우 복잡한
곳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관련 요인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문제 해결에서 형식논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미숙한 인간으로까지 간주된다.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
[한겨레] 국민들이 바라본 한국의 오늘과 내일
국민들이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은 ‘불안한 격변기’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사는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를 자유롭게 답하라고 했더니, ‘혼란스럽고 불안한 과도기’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응답이 전체의 36%로 가장 많았다. 응답 내용은 ‘혼란스럽다’, ‘정치가 불안하다’, ‘경제가 불안정하다’, ‘과도기적 사회다’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나이별로는 30대~40대에서 이런 응답 비율이 40%를 웃돌며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살기좋고 안정적 사회”18% 그쳐
세대 구분없이 “부정부패 큰 문제”

다음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하다’, ‘불공평하다’ 등 ‘불평등한 사회’의 범주가 전체의 21.8%를 차지했다. 이어 ‘신뢰가 없는 사회’(14.1%), ‘물질만능·경쟁중심의 사회’(9.8%) 등 부정적 응답이 주류를 이뤘고, ‘살기좋은 사회’(8.2%), ‘민주적-안정적 사회’(9.8%) 등 긍정적 답변은 소수에 그쳤다.

‘우리사회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을 하나만 고르라는 질문에는, ‘혼란’이란 대답이 30.9%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불공평’(22.4%), ‘갈등’(19.7%)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10년 전(1984년) 같은 조사에서는 ‘안정’(21.7%)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고, 이어 ‘불공평’(16.3%), ‘혼란’(15.1%) 등의 차례였다. 이번 조사에서 ‘안정’이란 응답은 7.4%에 그쳤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탄핵 정국과 총선 등 최근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와 지속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경제 불안정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것”55%가 낙관
미래주도정당 보수 12%-중도 20%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가장 많은 34.5%가 ‘부정부패’를 들었다. 이어 ‘빈부격차 심화’(21.3%), ‘실업 및 고용 불안’(17.4%), ‘경제성장 둔화’(10.5%)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모든 연령층에서 ‘부정부패’를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20~40대는 ‘빈부격차 심화’ 응답 비율이 50~60대보다 높았고, 20대에선 ‘고용 불안’을 선택한 응답자(22.5%)가 다른 연령층보다 훨씬 많았다. 한나라당 선호층은 ‘경제성장 둔화’(15.0%)를, 민주노동당 선호층은 ‘빈부격차 심화’(29.1%)를 꼽은 비율이 각각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겨레] 국민이 바라는 정치체제
한국사회가 혼란스런 격변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는 우리 국민들은 그 대안으로 어떤 ‘정치체제’를 꿈꾸는가.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국민의 다수는 ‘강력한 리더십이 이끄는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정부형태’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1.3%가 ‘4년 중임 대통령 중심제’를, 30.8%가 ‘5년 단임 대통령 중심제’를 꼽았다. ‘의원내각제’(10.4%)나 ‘이원집정제’(7.4%)는 일부에 그쳤다.

정치성향·지역·연령 따라 편차도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도 궤를 같이 했다. ‘권위주의적이라도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과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항으로 삼아 ‘바람직한 국가지도자상’을 물었는데, 53.2%가 ‘강력한 지도력’을 선택했다.

결국 우리 국민들은 혼란의 격변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5년 단임제보다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전체 응답자의 50.0%가 ‘가장 좋아하는 국가 지도자’로 박정희를 첫손에 꼽는 것으로 이어졌다. 김구(12.3%), 노무현(11.6%), 김대중(8.6%), 권영길(1.3%) 등을 훨씬 앞서는 선호도다. 오늘의 격변 속에서 과거의 박정희 시대를 ‘모범’으로 여기는 정서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정치성향 또는 지역·연령별 분포를 보면 의미있는 ‘균열’이 발견된다. 지도자 리더십 유형에 대한 위의 응답에서 열린우리당(56.2%)과 민주노동당(53.9%)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선호한 반면, 한나라당(70.4%)·민주당(60.0%) 지지자의 다수는 ‘강력한 지도력’을 꼽았다.

20대의 62.2%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선호했지만, 나이가 많을수록 그 반대의 경향이 높아져 50대의 경우 65.9%가 ‘강력한 지도력’에 대한 선호로 기울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지역 응답자의 63.4%가 ‘강력한 지도력’을, 광주·전라 지역 응답자의 50.9%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선호했다. 또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의 65.6%가 ‘강력한 지도력’을,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응답자의 54.6%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우선 가치로 꼽았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나아가 4년 중임제 개헌까지 바라고 있지만, 그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의 상당한 인식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겨레]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할까. 보수적이라 생각하는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주관적 진보층의 대다수(81.9%)는 우리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기 보다는 사회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보수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보다 그 수치가 더 높다. 그러나 주관적 보수층 역시 74.7%가 사회복지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가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물음엔 주관적 진보층과 보수층이 견해차이를 보였다. 진보층에선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대답이 51.6%로 ‘사회적 규범’(45.7%)이라는 생각보다 우세했다. 보수층에선 ‘사회적 규범’를 꼽은 대답이 51.3%로 ‘개인의 가치’(41.8%)보다 더 많았다.

‘능력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와 ‘힘없는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중에선 주관적 보수층의 절반이상인 55.9%가 ‘힘없는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를 선택했다. 그러나 진보층에선 ‘능력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 48.1%, ‘힘없는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47.8%로 보수층에 비해 힘없는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대답이 적었다.

주관적 보수층의 70.9%는 소득분배보다는 경제성장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주관적 진보층 역시 경제성장을 꼽은 대답이 65.6%로 소득분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대답(33.2%)보다 휠씬 높았다.

[한겨레] 어떤 가치 지향하나
이번 <한겨레> 창간여론조사에선 ‘물질주의적 가치’와 ‘탈물질주의적 가치’라는 기준을 적용해 우리 국민들은 어떤 가치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해 보았다. 물질주의는 경제성장, 신변안전, 국가안보 등 ‘양적성장’을, 탈물질주의는 소속감, 존중, 인간적인 사회 등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대변한다.

물질·탈물질주의 ‘혼합형’도 39.6%
20~30대·민노당 ‘탈물질’비중 높아
‘인간다운 사회’욕구 갈수록 늘어나

조사결과, 우리 국민들의 40.4%는 ‘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을, ‘탈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은 20%, 두 가지가 혼재된 ‘혼합형’은 39.6%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이 높았고, 젊은층일수록 탈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50대와 60대 이상 연령층은 절반 이상이 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을 보였고, 탈물질적 가치지향은 각각 6.8%, 7.0%에 불과했다. 반면, 20대와 30대는 혼합형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탈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이 각각 30.2%, 23.7%로 다른 연령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선호정당별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호층의 절반이상이 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을(한나라당 51.1%, 민주당 54.5%) 보였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선호층에선 혼합형 비중이 각각 41.4%, 42.3%로 가장 높았다. 민주노동당 선호층에선 탈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이 25.8%로 다른 정당 선호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특징을 보였다. 주관적 정치성향별로는 보수에서 진보층으로 갈수록 탈물질주의적 가치지향 수치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보수층 14.2%, 중도층 20.2%, 진보층 24.9%) 20대의 경우, 자신이 보수적이라는 응답층에선 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이 45.5%였으나, 진보적이라는 응답층에선 19.8%로 나타났다. 반면, 탈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은 보수 21.2%, 진보 37.8%로 나타났다. 20대의 경우 물질주의·탈물질주의적 가치지향이 주관적 정치성향을 가르는 주요기준이 되는 셈이다.

한편, 1998년, 2001년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에서 실시한 전국민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해보면, ‘높은 경제성장 유지‘(1998년 62.9%→2001년 58.8%→2004년 53%), ‘물가억제’(52.3%→54.7%→41.9%), ‘경제안정’(63.4%→69.4%→60.5%) 등 전반적으로 물질적 가치를 주요한 국가목표로 선택한 응답율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직장·사회에서 발언권 증대‘(1998년 9.9%→2001년 10.9%→2004년 17.6%), ‘정부정책에 대한 발언권 증대’(8.6%→7.3%→15.0%), ‘언론자유’(14.9%→19.1%→23.1%) 등 전반적으로 탈물질적 가치를 선택한 응답율은 증가했다.

[기사]실질 임금은 ‘마이너스’

2004. 5. 16. 20:54 | Posted by 속눈썹맨
올들어 근로자 임금상승률이 지난 5년새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상용근로자 5인 이상 기업 6,700곳을 대상으로 임금 및 노동 동향 조사를 벌인 결과 올들어 2월까지 1인당 월평균 임금 총액이 2백23만8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오르는 데 그쳤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전년동기 대비 임금상승률 14.9%에 비해 크게 둔화된 것이다.


또한 2002년 7.7%, 2001년 8.6%, 2000년 10%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친다.


노동부 관계자는 “명목임금은 상승세를 유지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오히려 -0.3%로 나타났다”면서 “경기 후행지표인 임금상승률이 둔화된 것은 지난해 우리 경제가 그만큼 나빠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임금상승률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상여금의 감소를 꼽았다. 실제 월평균 임금총액을 내역별로 보면 정액급여와 초과급여는 각각 7.5%, 4.9% 증가한 반면 성과급 등 특별상여는 9.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체 규모별로는 전체적으로 임금총액이 증가한 가운데 500인 이상 기업만 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채용과 퇴직 등 노동이동 동향은 1월에 상용근로자 14만명이 채용되고 14만9천명이 회사를 떠나 퇴직 초과를 기록했다. 이어 2월에는 채용 인원이 퇴직 인원을 불과 1,000명 넘어서는 데 그쳐 고용 침체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근로자 1인당 1~2월 평균 근로시간은 187.1시간(주당 43.1시간)으로 지난해 동기 193.5시간(주당 44.6시간)에 비해 3.3% 감소했다. 이는 올 설 연휴가 예년보다 길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