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이해영특파원
일본 산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삼성위협론 은 과대평가된 것이라고 요시카와 료조(吉川良三. 63) 전 삼성전자 상무가 아사히( 朝日)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 최신호(29일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요시카와씨는 삼성전자는 한국 총 세수의 7%를 차지하는 거대기업이지만 내부적 으로는 `질보다 양', `현장보다 내무관료'를 중시하며 `기초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 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회장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비서실이 과거에는 재무출신과 기술자 출 신이 절반씩이었으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구조조정본부로 명칭이 바뀌면서 재무출신으로만 구성돼 당장은 채산이 맞지 않더라도 장래 유망사업을 남겨두려는 기술자와는 달리 채산성 위주로 따지는 바람에 98년 이후 신규 수종사업의 씨 뿌리 기를 게을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요시카와씨는 히타치(日立)와 NKK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종사하다 이건희 회장 에게 발탁돼 1994년부터 작년까지 삼성전자 상무로 재직하면서 CAD/CAM분야에서 일 했다.
다음은 인터뷰 기사 요지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반도체가 인텔에 이어 세계 2위, 액정은 세계 1위, 휴대 전화는 세계 3위이고 2002년 기준 주식시가총액이 한국 전체의 26%를 넘는 거대기업 이다.
일본기업 사이에서 삼성위협론이 확산되고 있고 삼성 내부에도 `일본에 이겼다.
더 배울 것이 없다'는 분위기가 있지만 내부에 있던 내가 보기에 삼성위협론은 과대 평가된 것이다. 감히 말하지만 `적어도 기술면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전에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상무에게 "몇년후에는 망할지도 모른다.
지금 잘되는 사업들은 언젠가 중국에 뺏길 분야"라고 충고했다. 이 회장 자신도 작 년 봄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5년후 어떻게 살 것인지 보고서를 내라고 지시했다. 이 회장은 총명하기 때문에 위기감이 상당히 깊은 것 같다.
삼성의 강점은 이회장의 톱다운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빠른 점이다. 나는 87년 도쿄의 호텔에서 이회장으로부터 5시간 동안 삼성에 와달라는 설득을 받았지만 거절 했다. 93년 `신경영'을 내걸면서 이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전화를 걸어와 "CAD/C AM은 경영과 기술에서 시작해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종합예술"이 라고 설득했다. 당시 일본기업 최고경영자에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 의 문이다.
또 하나는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량생산주의다. 일본 첨단제품은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이 중심이지만 삼성은 중진국과 발전도상국 시장도 중시한다. CAD/C AM을 중심으로 한 IT인프라를 효율적으로 도입한 덕에 본국에서 설계를 하면 전세계 공장에서 즉시 양산이 가능한 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바로 이런 강점속에 삼성의 약점이 잠재돼 있다. 예를 들어 회장의 브레 인으로 경영전략을 짜는 비서실은 전에는 재무출신과 기술자출신이 절반씩 있었으나 IMF 위기 이후 구조조정본부로 바뀌면서 재무출신만으로 구성됐다. 기술자는 지금은 채산이 맞지 않더라도 장래 유망사업을 남겨두려하지만 재무출신은 숫자로 판단한다.
그 결과 매출액 대비 부채비율이 300%에서 40%대로 급격히 낮아졌다. 그렇지만 그바 람에 장래 수종사업의 싹을 꺾어 버렸다. 지금 돈을 벌고 있는 반도체, 액정, 휴대 전화 등은 IMF 위기 전에 착수한 사업들이다. 98년 이후에는 그런 신규사업의 씨뿌 리기를 게을리했다.
한국에는 원래 제조현장을 경시하는 풍토가 있다. 일례로 일본 설계기술자의 평 균 경험연수는 13년이지만 삼성은 약 3.5년이다. 물건 만드는 것을 경시하고 재무와 관리, 기획부문이 인기다. 금방 성과가 나지 않는 기초연구는 뒤처지고 있다.
삼성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연구원을 수백명 단위로 영입하고 있고 러시아학자도 10-20명 와 있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일 하는 `주말엔지니어'로 불리는 일본 대기업의 현역 기술자도 수십명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빼내고 나면 폐기자로 취급된다. 러시아인도 2 -3년에 바뀌고 일본인 기술자도 불만을 품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구조조정으로 애사심이 엷어지고 공명을 추구하는 개인주의가 확산됐다.
개인이 강해 지식을 공유하기 어려운 문화적 배경까지 겹쳐 그런 경향에 박차가 가 해졌다. 이건희 회장 자신도 양에서 질로의 전환을 호소했지만 측근은 그렇지 못하 다. 삼성에서 퇴직한 후 일본메이커의 간부가 잇따라 찾아오고 있지만 "연구개발을 착실히 하면 전혀 문제없다"고 대답해 주고 있다. 당장의 구조조정을 하느라 기초연 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일본이 불랙박스화해도 언젠가 삼성이 따라 잡 는다. 그렇게되면 라이선스료를 받으면 된다. 일본과 한국 메이커는 상호보완이 가 능한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