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등장한 과대포장론 … 발목잡는 요인 제거해야
이즈미야 와타루 반도체산업신문 편집장은 일본에서 반도체 전문가로 꽤 알려진 기자다. 그가, 일본 최대부수의 종합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 4월호에서 ‘삼성전자 거품론’을 제기했다.
'반도체 패자(覇者) 삼성의 사각(死角)'이란 제목의 기고에서다. 골자는, 삼성전자에 대한 평가에 거품이 많으며 ‘삼성위협론’도 과대포장됐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의 시대는 가고 일본 반도체 연합의 반격이 시작됐다”고 장담했다. 삼성이 지난 8년간 세계 1위의 아성을 지켜온 D램 반도체는 PC시장의 정체와 더불어 한물가고, 일본이 강한 디지털 가전과 시스템 반도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
거품론엔 삼성전자 속사정에 훤한 전직 임원까지 가세했다. 94년부터 작년까지 삼성전자 상무로 CAD/CAM 분야에서 일했던 요시카와 료조(吉川良三)는 아사히 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 최신호(29일자)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삼성은 질(質)보다 양(量)을, 현장보다 내무관료를 중시하며 기초 기술연구에 소홀하다.” 그는 삼성그룹 후계자 이재용 상무에게 “몇 년후 (삼성은) 망할지 모른다. 지금 잘되는 사업은 언젠가 중국에 뺏길 분야”라고 충고했다고 적었다.
물론 삼성측은 ‘악의적으로 부풀린 삼성 때리기’라며 불쾌한 반응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족집게처럼 우리의 약점을 짚어냈다’는 자성론도 만만치 않다.
사실 삼성의 최고경영층 내에선 진작부터 미래에 대한 고민과 위기감이 확산되어 왔다. 이건희 회장이 작년 봄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향후 5년, 10년을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고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승승장구한다고 ‘완전한 기업’일 수는 없다. 성공신화와 화려한 실적에 약점이 가려져 있을 뿐이다. 따지자면, 삼성전자의 약점은 한둘이 아니다.
우선 핵심·원천기술의 해외의존도가 너무 높다. D램 반도체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낸드(NAND)플래시 메모리는 렉사미디어, 휴대전화는 퀄컴에게 상당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또 반도체·액정 재료에선 기본소재와 핵심부품의 60~70%를 일본에 의존한다. 전 임원 요시카와가 “삼성은 적어도 기술면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차세대 시장을 창출하는 능력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즈미야의 분석을 빌리면, 90년대 일본 전자업계가 D램 시장을 삼성전자에 내준 것은 ‘전략적 후퇴’였다. 저가(低價) 출혈경쟁의 무모한 싸움을 피하고 디지털 가전 쪽을 선점하려는 의도였다.
반면 삼성은 기존 시장에 집착해 이렇다 할 신수종(新樹種) 사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8조원에 육박하는 현금보유, 평균 300%에서 35%까지 급격히 떨어진 부채비율은 좋게만 해석할 일이 아니다. 지금 돈 벌고 있는 반도체, 액정, 휴대전화 등이 모두 IMF 위기 전에 씨를 뿌린 사업들이란 지적도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이 밖에 경직된 조직문화, 후계구도를 둘러싼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한국기업으로서 ‘태생적 한계’ 등도 글로벌 삼성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삼성전자는 한국경제의 ‘마지막 보루’다. 국내총생산(GDP)의 20%, 세수(稅收)의 70%, 거래소시장 시가총액의 23%(87조원)를 차지하는 그 기업에 미래가 없다면, 한국경제도 미래가 없다.
(이준·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