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공계 위기’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자, 한켠에서는 위기가 과도하게 조장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이공계 위기는 지난 90년대 초반 크게 일었던 ‘인문학 위기’의 연장선으로, 대학에 시장논리가 확산되면서 시장성이 떨어지는 학문이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한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 문제는 늘 있던 문제고, 오히려 전통 인문학이야말로 정부 지원에 더 허덕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공계의 위기’가 전면에 부각된 것은 뭔가 복합적인 ‘음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음모의 첫 번째 가설은 정치적 지형과 연결돼 있다.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통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 이공계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면서 이들을 우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면서 이번 역시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공계 공직자 진출 확대’ 등이 나오면서 이공계 위기에 대해 언급이 집중됐다는 것이다. 때마침 2001년 처음으로 대학수능입시에서 이과계열 지원자가 줄어들어, 논의가 자체적으로 증폭될 수 있는 상황을 만난 것이 예전과 다른 현상이었다. 이영희 교수는 “사회 지형을 바꾸려는 의도와 실제 변화상이 만나면서 이야기가 더 부풀려진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가설은 과학기술인들이 2002년 의약분업 때 의사들의 파업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자신들보다 처우가 훨씬 더 좋은 다른 직능인들도 제 목소리를 내는데, 유독 과학기술인들은 그런 것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이 폭발하면서 우리도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높여보자는 주장이 쏟아졌다”는 게 한국과학기술인연합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공계 위기’를 둘러싼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퍼지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비판도 있다. 이공계인들이 자신들의 부당한 처지를 너무 과도하게 밝히는 바람에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애써 “이공계 위기가 아니다”라는 말로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하기도 한다. 얼마 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공계 기피란 말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런 측면에서 풀이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