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호경기자= 외국계 자본의 국내 주요 금융기관 인수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현재 상황이 소매금융 위주의 외국 자본 유치로 금융 주권을 거의 상실한 맥시코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0일 '외국 자본의 멕시코, 영국 금융산업 진출 사례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외국 자본의 국내 소매금융시장 잠식은 국부 유출 뿐 아니라 금융 주권 상실 문제로 이어져 경제 성장 동력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멕시코와 영국이 과거 경제 위기를 겪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산업의 상당 부분을 외국 자본에 넘겨 준 것은 공통적이지만 전자는 소매금융 위주로, 후자는 투자은행업 위주로 각각 외자를 유치했고 현재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의 경우 지난 95년 페소화 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스페인과 미국 등의 세계 정상급 은행들이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을 대거 인수해 작년 말 현재 멕시코 6대 시중은행 중 5개가 외국계일 뿐 아니라 외국인 지분율(자산 기준)이 83%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외국계 은행은 대부분 신용카드 대출, 모기지론 등 수익성 높고 안전한 소매금융업에 주력하면서 미국의 경기 침체로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멕시코 실물 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미 뉴브리지캐피탈 등 외국계 사모펀드가 제일, 외환, 한미 등 3개 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한 터에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지분(86.8%)까지 해외에 매각될 경우 국내 시중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74%에 달해 한국이 멕시코와 매우 흡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관측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기업금융을 기피하고 프라이빗 뱅킹(PB) 등 소비자금융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나 한미은행을 인수한 후 상장 폐지를 추진하는 씨티그룹의 예에서 보듯이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투명성이 크게 약해지고 있다는 점 등도 멕시코와 공통적인 우려 사항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반면 영국은 지난 1986년 대처 정부가 '금융빅뱅'으로 불리는 금융 개혁을 추진할 당시 외국 자본들이 시중 상업은행이 아닌 영국의 명문 투자은행들을 대거 인수했고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 등의 미국계 대형 투자은행들이 런던에 진출해 도매(기업)금융, 저당대출, 증권 분야 업무가 크게 확대됐다고 보고서는 상기시켰다.
그 결과 영국은 세계 2위의 금융시장 지위를 회복하고 금융 서비스 수출 부문에서는 현재 세계 1위를 차지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박덕배 박사는 "국부 유출을 막고 금융 주권을 지키려면 외국 자본의 금융산업 유치 방향을 은행이 아니라 영국처럼 투자은행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국내 2위의 금융기관인 우리금융지주를 국내 자본이 매입할 수 있도록 국내 사모펀드 육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