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서울에서 청주가 가까울까, 부산이 가 까울까?”
뻔한 질문이라고? 함정이 숨어있다. 실제 거리를 묻는 건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약 428km로 청주까지 거리(약 123km)의 3.5배다. 하지만 시간으로 따졌을 때도 그럴까?
사전적인 의미로 ‘가깝다’라는 단어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가 짧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시간으로 환산한 거리 개념을 훨씬 많이 쓴다. 서울시청 앞에서 강남역까지 “택시로 30분 걸린다”고 하지 “15km 떨어져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귀성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의 화제가 되는 건 “고향까지 몇 시간 걸렸다”는 사실이다. 거리를 이야기할 때 우리에게 익숙한 기준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은 시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지도를 다시 그려봤다. 우선 일반 지도에서 주요 지점을 선정했다. 그런 다음 버스, 비행기, 기차, 선박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평상시 서울에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때 걸리는 시간을 거리로 환산해 지도를 다시 그렸다. 시간 지도에서 나의 고향은 어디쯤 있는지 찾아보시길. 이 지도는 일반 지도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시간 지도
만들어진 시간 지도에서 일부 섬 지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대부분 지역은 서울에서 5시간 거리 안에 있다. 물론 갈아타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교통수단 안에 머무는 시간만 계산한 것이다. 5대 광역시는 불과 1시간 안팎으로 경기 파주시나 동두천시, 연천군보다 훨씬 가까웠다.
가장 먼 곳은 역시 연평도나 백령도, 우이도처럼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들이었다. 하지만 육지에도 섬 같은 곳이 있었다. 철도와 비행기로 접근하기 어려운 강원도와 경북 일부 지역은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로 불릴 만했다. 특히 강원도의 통일전망대는 시간상으로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육지였다.
‘시간상 거리’는 추석이나 설처럼 전국적인 이동이 많은 명절에 더욱 민감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누구나 오갈 때 드는 시간과 비용을 보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명절엔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시간을 아끼거나, 돈을 아끼거나. 빠른 교통수단일수록 비싸다.
고향이 부산인데 빨리 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비행기나 기차표를 못 구한 상황이라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도 있다. 승용차를 몰고 부산에 가는 대신 비행기로 일본(이를테면 후쿠오카)을 경유해 부산으로 가는 것이다. 왕복 70만원 정도의 돈으로 몇 시간을 살 수 있다.
○바뀌는 귀성풍경
건설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7일 서울에서 출발하면 부산까지 10시간, 목포는 9시간30분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시간 지도에서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던 두 도시는 이날 승용차로 가는 사람에겐 10배나 먼 곳으로 밀려난다. 그래도 가야 하는 고향이다.
교통의 발달은 삶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귀성 풍경도 마찬가지다.
도로 보급이 지금 같지 않던 60년대에는 기차가 최고였다. 명절이면 표를 구하기 위해 서울역 앞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했다.
1969년 9월 24일자 동아일보. 객차 안의 선반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고향으로 가는 귀성객의 사진이 보인다. 기사는 “정원 87명의 3등 객차 안에 230여명씩이나 들어차 더 앉지도 서지도 못 했다”고 적혀 있다. 콩나물시루 같아도 탈 수만 있다면…. ‘필사의 귀성’이라는 제목의 사진엔 출발 직전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두 여성이 객차도 아닌 기관차에 매달려 있다.
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버스가 기차의 자리를 대신했다. 여객 수에 수송거리를 곱한 ‘인-km’를 기준으로 한 국내 수송분담률은 60년 철도 52.2%, 도로 46.0%이던 것이 97년에는 철도 20.9%, 도로 74.3%로 뒤집혔다.
85년 차량 등록대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승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97년 1000만대를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1459만대였다. 명절 체증은 어느 순간부터 뉴스도 아닌 상황이다.
○명절의 의미
농경사회에선 고향의 의미가 지금처럼 각별하지 않았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추석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 소 말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들에게도 포식의 날”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명절은 축하하고 즐기는 날이다.
명절이 ‘만나는 날’로 바뀐 건 60, 70년대 도시화의 산물이다. 몸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부유(浮游)하고 있다. 30년쯤 지나서도 고향의 인력(引力)이 지금 같을까. 귀성 행렬은 지금 세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 지도는 의미가 없다. 30년 후 명절이 그저 단순한 휴일로, 즐기는 날로 돌아가면 명절 귀성길 시간 지도는 따로 그릴 필요가 없겠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시간 지도는 이렇게…▼
평상시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택했을 때 걸리는 시간을 거리로 환산했다. 서울 중심의 동심원은 30분 간격이다.
이동 시간은 각 공항과 기차역, 버스 및 선박 터미널의 시간표를 기준으로 했으며 갈아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도 아래쪽 사량도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진주까지, 다시 버스로 통영까지 간 후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계산했다.
정보디자인=정보공학연구소(www.intercommunism.com)
▼귀성객 84% “그래도 승용차”▼
추석 연휴의 대이동.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회사원 이충환씨(35·서울 동작구 흑석동) 가족을 모델삼아 서울의 4인 가족이 부산까지 귀성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뽑아봤다.
건설교통부는 이번 추석 연휴에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7872만여명(연인원) 가운데 83.8%가 승용차를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철도 이용자는 3.3%, 고속버스 1.4%, 비행기 0.6%로 추산된다.
비행기는 대개 추석 340일 이전에 예매를 시작해 당일 예매가 끝나버리는 추세라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표를 구하기 어렵다. 추석 연휴 한 달 전쯤 특별기를 추가하던 관행도 고속철도가 개통된 뒤 사라졌다.
철도 역시 지난달 10일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30분∼1시간 안에 귀성, 귀향 표가 동이 났다. 반면 시간과 비용이 승용차와 엇비슷한 고속버스는 20일 현재에도 좌석 여유분이 있다.
이씨는 이번 추석에 승용차를 이용해 귀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간과 비용이 비슷하다면 직접 운전하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고속버스가 낫지 않을까? 그는 “원하는 때에 쉴 수 없고 선물 등 짐을 들고 다녀야 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또 다시 고향 집까지 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고속버스 이용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도 별로 크지 않다. 김해공항에서 부산 동래구의 본가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반이 더 걸리기 때문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단축한 데 따르는 효용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엔 비용과 시간을 모두 감안할 때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철도다. 그러나 표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건설교통부가 추산한 시간가치(교통 혼잡에 따른 경제활동의 손실분) 중 비업무 통행의 시간가치 비용(시간당 2037원·2000년 기준)을 기준 삼아 이씨의 경우를 계산해봤다. 평소 5시간 반이 걸리는 서울∼부산의 주행시간은 추석 연휴 귀성 시즌엔 10∼11시간으로 늘어난다. 늘어난 시간에 대한 성인 2명의 시간가치 비용은 1만8330∼2만6480원 선.
실제 이씨가 ‘체감’하는 시간가치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는 “어차피 휴일이므로 그 시간이 단축됐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기회에 대한 아쉬움이 별로 없고, 가족이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있으므로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의 김강수 국가교통DB센터장은 “시간가치는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귀성과 같은 통행의 시간가치는 1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요자가 자발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라면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광범위한 표본을 조사하지 않는 한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수도권 인구 집중과 교통 체증▼
통계만 놓고 보면 귀성길 교통 체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해 자동차 등록대수는 약 1458만대로 1970년(약 12만대)에 비해 120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의 도로는 약 4만km에서 9만7000km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60년대 이후 한국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수도권 이외 지역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3년 현재 서울에는 1km²에 평균 1만6975명이 바글거린다. (자료=건설교통통계연보 및 각종 논문) 정보디자인=정보공학연구소
《“서울에서 청주가 가까울까, 부산이 가 까울까?”
뻔한 질문이라고? 함정이 숨어있다. 실제 거리를 묻는 건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약 428km로 청주까지 거리(약 123km)의 3.5배다. 하지만 시간으로 따졌을 때도 그럴까?
사전적인 의미로 ‘가깝다’라는 단어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가 짧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시간으로 환산한 거리 개념을 훨씬 많이 쓴다. 서울시청 앞에서 강남역까지 “택시로 30분 걸린다”고 하지 “15km 떨어져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귀성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의 화제가 되는 건 “고향까지 몇 시간 걸렸다”는 사실이다. 거리를 이야기할 때 우리에게 익숙한 기준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은 시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지도를 다시 그려봤다. 우선 일반 지도에서 주요 지점을 선정했다. 그런 다음 버스, 비행기, 기차, 선박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평상시 서울에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때 걸리는 시간을 거리로 환산해 지도를 다시 그렸다. 시간 지도에서 나의 고향은 어디쯤 있는지 찾아보시길. 이 지도는 일반 지도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시간 지도
만들어진 시간 지도에서 일부 섬 지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대부분 지역은 서울에서 5시간 거리 안에 있다. 물론 갈아타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교통수단 안에 머무는 시간만 계산한 것이다. 5대 광역시는 불과 1시간 안팎으로 경기 파주시나 동두천시, 연천군보다 훨씬 가까웠다.
가장 먼 곳은 역시 연평도나 백령도, 우이도처럼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들이었다. 하지만 육지에도 섬 같은 곳이 있었다. 철도와 비행기로 접근하기 어려운 강원도와 경북 일부 지역은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로 불릴 만했다. 특히 강원도의 통일전망대는 시간상으로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육지였다.
‘시간상 거리’는 추석이나 설처럼 전국적인 이동이 많은 명절에 더욱 민감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누구나 오갈 때 드는 시간과 비용을 보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명절엔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시간을 아끼거나, 돈을 아끼거나. 빠른 교통수단일수록 비싸다.
고향이 부산인데 빨리 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비행기나 기차표를 못 구한 상황이라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도 있다. 승용차를 몰고 부산에 가는 대신 비행기로 일본(이를테면 후쿠오카)을 경유해 부산으로 가는 것이다. 왕복 70만원 정도의 돈으로 몇 시간을 살 수 있다.
○바뀌는 귀성풍경
건설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7일 서울에서 출발하면 부산까지 10시간, 목포는 9시간30분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시간 지도에서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던 두 도시는 이날 승용차로 가는 사람에겐 10배나 먼 곳으로 밀려난다. 그래도 가야 하는 고향이다.
교통의 발달은 삶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귀성 풍경도 마찬가지다.
도로 보급이 지금 같지 않던 60년대에는 기차가 최고였다. 명절이면 표를 구하기 위해 서울역 앞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했다.
1969년 9월 24일자 동아일보. 객차 안의 선반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고향으로 가는 귀성객의 사진이 보인다. 기사는 “정원 87명의 3등 객차 안에 230여명씩이나 들어차 더 앉지도 서지도 못 했다”고 적혀 있다. 콩나물시루 같아도 탈 수만 있다면…. ‘필사의 귀성’이라는 제목의 사진엔 출발 직전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두 여성이 객차도 아닌 기관차에 매달려 있다.
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버스가 기차의 자리를 대신했다. 여객 수에 수송거리를 곱한 ‘인-km’를 기준으로 한 국내 수송분담률은 60년 철도 52.2%, 도로 46.0%이던 것이 97년에는 철도 20.9%, 도로 74.3%로 뒤집혔다.
85년 차량 등록대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승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97년 1000만대를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1459만대였다. 명절 체증은 어느 순간부터 뉴스도 아닌 상황이다.
○명절의 의미
농경사회에선 고향의 의미가 지금처럼 각별하지 않았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추석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 소 말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들에게도 포식의 날”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명절은 축하하고 즐기는 날이다.
명절이 ‘만나는 날’로 바뀐 건 60, 70년대 도시화의 산물이다. 몸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부유(浮游)하고 있다. 30년쯤 지나서도 고향의 인력(引力)이 지금 같을까. 귀성 행렬은 지금 세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 지도는 의미가 없다. 30년 후 명절이 그저 단순한 휴일로, 즐기는 날로 돌아가면 명절 귀성길 시간 지도는 따로 그릴 필요가 없겠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시간 지도는 이렇게…▼
평상시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택했을 때 걸리는 시간을 거리로 환산했다. 서울 중심의 동심원은 30분 간격이다.
이동 시간은 각 공항과 기차역, 버스 및 선박 터미널의 시간표를 기준으로 했으며 갈아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도 아래쪽 사량도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진주까지, 다시 버스로 통영까지 간 후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계산했다.
정보디자인=정보공학연구소(www.intercommunism.com)
▼귀성객 84% “그래도 승용차”▼
추석 연휴의 대이동.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회사원 이충환씨(35·서울 동작구 흑석동) 가족을 모델삼아 서울의 4인 가족이 부산까지 귀성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뽑아봤다.
건설교통부는 이번 추석 연휴에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7872만여명(연인원) 가운데 83.8%가 승용차를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철도 이용자는 3.3%, 고속버스 1.4%, 비행기 0.6%로 추산된다.
비행기는 대개 추석 340일 이전에 예매를 시작해 당일 예매가 끝나버리는 추세라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표를 구하기 어렵다. 추석 연휴 한 달 전쯤 특별기를 추가하던 관행도 고속철도가 개통된 뒤 사라졌다.
철도 역시 지난달 10일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30분∼1시간 안에 귀성, 귀향 표가 동이 났다. 반면 시간과 비용이 승용차와 엇비슷한 고속버스는 20일 현재에도 좌석 여유분이 있다.
이씨는 이번 추석에 승용차를 이용해 귀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간과 비용이 비슷하다면 직접 운전하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고속버스가 낫지 않을까? 그는 “원하는 때에 쉴 수 없고 선물 등 짐을 들고 다녀야 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또 다시 고향 집까지 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고속버스 이용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도 별로 크지 않다. 김해공항에서 부산 동래구의 본가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반이 더 걸리기 때문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단축한 데 따르는 효용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엔 비용과 시간을 모두 감안할 때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철도다. 그러나 표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건설교통부가 추산한 시간가치(교통 혼잡에 따른 경제활동의 손실분) 중 비업무 통행의 시간가치 비용(시간당 2037원·2000년 기준)을 기준 삼아 이씨의 경우를 계산해봤다. 평소 5시간 반이 걸리는 서울∼부산의 주행시간은 추석 연휴 귀성 시즌엔 10∼11시간으로 늘어난다. 늘어난 시간에 대한 성인 2명의 시간가치 비용은 1만8330∼2만6480원 선.
실제 이씨가 ‘체감’하는 시간가치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는 “어차피 휴일이므로 그 시간이 단축됐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기회에 대한 아쉬움이 별로 없고, 가족이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있으므로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의 김강수 국가교통DB센터장은 “시간가치는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귀성과 같은 통행의 시간가치는 1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요자가 자발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라면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광범위한 표본을 조사하지 않는 한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수도권 인구 집중과 교통 체증▼
통계만 놓고 보면 귀성길 교통 체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해 자동차 등록대수는 약 1458만대로 1970년(약 12만대)에 비해 120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의 도로는 약 4만km에서 9만7000km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60년대 이후 한국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수도권 이외 지역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3년 현재 서울에는 1km²에 평균 1만6975명이 바글거린다. (자료=건설교통통계연보 및 각종 논문) 정보디자인=정보공학연구소